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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밤과 꿈
[아침광장] 밤과 꿈
  •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 승인 2020년 09월 22일 18시 13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9월 23일 수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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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꿈은 (밤에) 잘 때나 꾸는 것이다.” 한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하는 말입니다. 회사 생활을 접고 기술을 익혀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 보고자 했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갈 길은 먼데 곳곳에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나마 그런 하소연을 할 수 있는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밤이 있어서입니다. 격의 없이 술잔을 나누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도 다 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밤은 그렇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장소입니다. 밤과 꿈이 시인들의 주된 관심사였던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시인 이상화가 「나의 침실로」에서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뒹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라고 노래한 것도 그런 밤의 본질과 효용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밤이 우리의 ‘목숨의 꿈’을 배양하는 장소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낭만주의자를 자처합니다. 저는 한글을 막 깨쳤을 때 이 시를 처음 읽었습니다. 달성공원에 있는 상화시비에서였습니다. 내용도 어려웠고 글씨도 낯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마돈나’와 ‘목숨의 꿈’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도대체 저 말이 무엇일까? 아마 수백 번은 그렇게 자문했을 것입니다. 공원 앞에서 작은 가게를 내고 있던 아버지가 현장 보급소로 점찍은 장소가 바로 거기였습니다. 학교 갔다 오면 형들과 교대로 당번을 섰습니다.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그곳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습니다. 밤이면 특히 더 그랬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희미한 수박등 아래로 젊은 연인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렇게 내 조숙한 ‘목숨의 꿈’이 밤을 만난 곳, 상화시비는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남모르게 각인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둠은 사랑의 말이 더 자유롭게 흘러나올 수 있는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촛불이나 등불의 희미한 불빛으로 남녀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더 친밀해졌다. 이탈리아의 한 작가는 “어둠이 모든 것을 말하기 쉽게 만들어줬다”고 표현했다. 밤에는 시력이 어두워지고, 감정을 일으키는 데 더 위력적인 청각, 촉각, 후각이 더 중요해졌다.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밤에 연인의 목소리는 얼마나 옥구슬 같은가”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남녀가 함께 있는 곳에서 촛불이나 등불을 끄는 것은 성욕으로 충만한 행동을 뜻했다. 매사추세츠의 한 술집에서 헤스터가 촛불을 끄자 한 여인이 외쳤다. “저 여자는 용감한 갈보, 아니면 용감한 주부야.” 헤스터는 유부녀였지만, 뱃사람의 손을 잡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로저 에커치, 조한욱 역,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밤은 욕망과 충동을 ‘도와주는 환경’이었다는 설명입니다. 낮의 양광(陽光)이 차단했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밤이라는 철로 위에서 마음껏 달릴 수가 있습니다. 낮에 접었던 상상의 날개도 밤이 되면 기지개를 켜고 활짝 펼쳐집니다. 밤에는 ‘낮 것’들의 침입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밤에는 도덕과 영리(榮利)의 보초병이 필요 없습니다. 눈 부라리는 ‘낮 것’들이 철수하고 상냥한 ‘밤의 요정’들만 득시글거리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는 ‘어두운 놈’(Dark Cully)이라는 말을 발각될까 두려워 밤에만 정부(情婦)와 만나는 유부남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저도 오래토록 밤에만 글을 썼습니다. 제 글쓰기도 평생 ‘어두운 놈’의 그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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