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11월 7일까지 황창배미술관 3층

황창배 ‘무제’(1983)
황창배 ‘무제’(1983)

황창배19주기 특별전 ‘파격의 서막-1979년이후그림’展이 10월 6일부터 11월 7일까지 황창배 미술관(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89-8. 3층)에서 열린다.

한국화의 경계를 확장시킨 것으로 평가되는 황창배는 대학과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동양화 화법의 정석대로 구상작품 창작에 전념했고 졸업 후에는 창작의 제한이 없는 자유로운 비구상작품에 몰두했다. 동양적 신비를 연무(煙霧)처리법으로 표현한 ‘비(秘)’시리즈로 1977년 제26회 국전에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 이듬해 1978년 제27회 국전에서 동양화 비구상부문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당시 황창배의 비구상 창작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전 대통령상 수상 이듬해인 1979년, 황창배는 화법에 전환을 꾀한다.

“과거 국전 출품 때는 일단 큰 골격을 선정해 놓고 그 속에서 그려 나갔으나, 지금은 무엇을 전제하지 않은 채 작업에 들어갑니다. 계획을 하고 나면 곧 한계에 부딪혀서인데, 그래서 가령 사람을 그려도 점(點)부터 찍어 놓고 시작하지요. 그 대신 바로 붓이 옮겨가는 만큼 종이 소모량은 많아요. 여전히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무제(1981)

황창배는 1979년을 전후해 동양화의 기본 맥은 지켜져야 한다는 정신으로부터 비구상의 자유로움까지 아우르는 황창배만의 파격적인 구상작품 창작에 매진했고, 즉흥적으로 ‘1979년 이후 그림’이라는 각을 해 스스로 만족한 그림에 날인했다. 이는 비구상과 구상의 경계, 국전출품 전후(前後)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한국화의 테러리스트’라 불리며, 파격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들며 1990년대 ‘황창배 신드롬’을 일으킨 황창배, 형식에 있어서는 전통에 대한 부정과 저항으로 맞섰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한국성’을 부단하게 추구했던 그의 과감한 실험적이고 자유분방한 작품들은 한국화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황창배 작고 19주기를 기념하며, 1979년부터 1983년까지 작가가 선별해 ‘1979년 이후 그림’이라는 각을 날인한 작품들을 위주로 한 회화작품과 작품에 날인된 십 여점의 전각작품을 선보인다. 구상과 비구상을 오가며 치열하게 분투했던 그의 창작열과, 새로운 동양화 화법을 넘어서 한국화의 경계를 확장했던 그 만의 파격적인 표현을 접할 수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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