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대구 팔공산자락 초입에 위치한 봉무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오후 시간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지막한 산과 단산지라 불리 우는 호수가 탄성을 자아냈다. 나도 모르게 와! 하고 절로 감탄하였다. 불로동 고분군의 옛 무덤과 인접한 호수는 조금은 크다고 느낀 면적의 독특한 형태가 한눈에 호기심을 자아냈다.

호수의 전체 생김새가 사람 손가락을 펼친 모양으로 못 둑 따라 걷는 길이 시시각각 변화와 새로움을 함께했다. 다른 호수들을 가봤을 때와는 또 다른 이곳의 체험은 상상 이상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오랜만의 경험이다.

오래 전 동료 화가들과 함께 일본 교토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일본현대미술의 모노하 작가들에게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매일 홀로 산책하여 유명해진 긴카쿠지의 ‘철학의 길’이 연상된다. 교토대 철학과 교수인 니시다 기타로가 산책을 하며 모색한 이론이 ‘선의 철학’으로 일본 근현대 철학의 종주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 모노하의 선각자인 재일작가 곽인식과 이우환 등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 아름다운 수로의 길을 걸으며 우리지역에도 이러한 사색의 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하루의 바쁨 속에 잠시 틈을 내어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내면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인간의 삶에 관한 시대정신을 담은 작업으로 상념에 잠기고 싶었다. 그간 많은 올렛길과 여러 길들을 걸어 보았다. 우연히 중천의 오후에 해가 비스듬히 내리 쬐어 물빛이 일렁거리는 단산지를 걸으며 여기가 바로 우리지역 대구에 자리한 철학의 길이 아닌가? 하고 자문하게 되었다.

대구 동구 봉무공원의  단산지.
대구 동구 봉무공원의 단산지.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코스의 거리지만 중간 지점의 벤치에 앉아 나무와 함께한 물을 바라보며 나를 둘러싼 번민과 작가로서의 새로운 에너지도 충전시켰다.

‘신은 자연을 창조하고 인간은 도시 공간을 만든다’는 말과 같이 신이 만든 자연과 인간이 조성한 생활공간 속에서 조화롭고 상생하며 살고자 한다. 최근 필자와 관계된 복합적인 픽션과 팩트가 함께 다가왔다. 처음에는 노여움과 실소가 자리하였지만 이 또한 중용에 나오는 지성무식(至誠無息)의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어라’ 즉 최고의 성실함은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고 새겨보며 따르고자 한다.

정성스럽게 나아갈 때 마음의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고 하니 하루를 열정으로 살아 갈 것을 다짐해본다. 희노애락은 한꺼번에 몰려오나니 번민의 나날을 보내고 난후 또 다른 기회와 성숙이 나를 기다린다.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의 일상으로 힘든 지금, 미술가로서 작업실에서의 바쁜 나날이 진행 되고 있다. 작품에 몰입하고 연구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허나 현재 진행 중인 달성대구현대미술제에 설치한 입체조각 작품으로 오히려 많은 문의와 제작 주문이 오고 있다. 참으로 세상은 모를 일이다.

혹자는 말한다. 버즈 마케팅이나 노이즈 마케팅을 구사한 것 아니냐고. 여기에 답글로써 어릴 적부터 항상 좌우명으로 새기는 마철저(磨鐵杵) ‘쇠몽둥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글귀로 대신 하고자 한다.

삼라만상의 기운이 가득한 가을이 왔다. 벌써 성큼 와버린 초가을 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이다. 새로운 일상과 작업으로 또 다른 나를 찾는 과정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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