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 케인 변호사
하윤 케인 변호사

벤틀리 모터스는 1919년 영국 실업가 집안의 형제 윌터 오웬 벤틀리와 호레이스 밀너 벤틀리가 설립한 영국의 고급 자동차 회사다. 설립 초기인 1920년대에 누가 튼튼하고 오래 달리는 차인지를 겨루는 경기인 르망 24시에 여러 우승 기록을 세우며 명성을 쌓았다. 벤틀리는 르망 24시에서 인정받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속도와 럭셔리를 자랑하는 차를 만들었다.

경제 대공황이란 보릿고개를 지나며 벤틀리는 풍파를 맞는다. 판매 실적이 저조했던 벤틀리는 이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1931년에 롤스로이스에 인수된다. 롤스로이스 산하의 벤틀리는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모기업인 롤스로이스가 럭셔리 이미지를 가진 차를 만들었기 때문에, 롤스로이스는 스포츠 모델 정도의 위상밖에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약 60년 후, 벤틀리는 폭스바겐에 인수되며 이제 과거의 명성을 찾게 되었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이 벤틀리를 선택하며 대중적으로 ‘럭셔리 카’의 이미지를 확립하고 있다.

벤틀리가 오너십에만 풍파를 겪은 것은 아니다. 벤틀리는 상표 문제로 약 20년간 영국 멘체스터의 작은 가족 경영 기업과 씨름을 해왔다. 멘체스터의 벤틀리는 1962년에 설립된 브랜드로직(Brandlogic)사의 상표 ‘벤틀리(Bently)’이다. 브랜드로직의 벤틀리는 1982년 상표권을 획득했다. 이 상표는 1990년 밥 리스 (Bob Lees)가 회사를 인수하며 소유권이 변경됐다.

상표는 특정 제품에 브랜드 이름을 등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이름이라도 판매 제품이 다르면 모두 등록이 가능하다. 즉, 벤틀리 모터스가 자동차 상표로 벤틀리를 등록하고 브랜드로직이 의류 상표로 벤틀리를 등록하는 것이 허용된다. 벤틀리 모터스와 브랜드로직의 상표 분쟁은 벤틀리 모터스가 자사 홍보 상품으로 티셔츠 등의 의류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법적으로는 브랜드로직의 상표 때문에 벤틀리 모터스가 ‘벤틀리’를 의류 상표로 사용하는 경우, 브랜드로직의 상표를 침해하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브랜드로직은 1998년부터 벤틀리에 연락을 취해 ‘벤틀리’ 의류 상표의 사용권을 줄 의향이 있음을 알렸다. 상표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고자 한 것이다.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벤틀리 모터스가 브랜드로직의 상표권을 사용할 허락을 받는다면, 벤틀리 모터스가 상표 문제없이 홍보용 티셔츠를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벤틀리 모터스는 이에 응하지 않고 영국과 EU 상표청에 브랜드로직의 벤틀리 의류 상표 취소를 요청했다.

벤틀리 모터스는 자사의 의류 판매는 벤틀리 같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라면 밟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며 자신들의 벤틀리 상표 사용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류나 모자 등의 판매를 수년 동안 이어왔으며 소비자들이 브랜드로직 제품과 자신의 제품을 혼동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동일한 제품을 판매했으며 브랜드로직 제품과 비슷하다고 볼만한 제품을 팔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법원은 벤틀리 모터스의 입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벤틀리 모터스가 1987년 경부터 의류 판매를 하면서 브랜드로직의 브랜드 가치를 서서히 침해했다며 벤틀리 모터스를 꾸짖었다. 또한 벤틀리 모터스가 상표 등록가능성 검토로 브랜드로직의 상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도 벤틀리 모터스에 불리한 조건이었다. 결국 벤틀리 모터스는 패소했으며 더 이상 티셔츠 판매를 할 수 없게 됐다. 벤틀리 모터스가 브랜드로직의 벤틀리 상표를 넉넉한 배상금을 주고 샀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작은 브랜드들은 상표 분쟁이 생기면 지레 겁을 먹고 상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을 제대로 안다면 작은 브랜드 거대 기업에 맞서 똑똑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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