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강타로 피해를 입은 울릉이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됐다. 영덕과 울진을 포함해서다. 특히 화산암으로 이뤄진 울릉도는 청정 동해안 유일한 섬이기도 하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불현듯 또 다른 태풍의 추억에 잠겼다.

어언 28년 세월이 흐른 1992년 9월 중순쯤이니 정확히 이맘때다. 당시 울릉도는 해외여행에 비유할 정도로 관광이 흔하진 않았다. 교통과 숙박 시설이 열악한 탓이다. 일주도로도 없었다. 통통배와 승용차를 번갈아 타면서 이동하는 여정이다.

입도 사흘째, 성인봉 산행을 마치고 울릉도 북서쪽 ‘태하’란 곳에 여장을 풀었다. 한데 제19호 태풍 ‘테드’가 엄습했다. 그때는 기상 예보가 활발치 않았다. 요즘 같으면 아마 울릉도 방문 계획을 포기했으리라. 도동항 당도 후에야 날씨 얘기를 들었다.

동해 바다 한가운데 천혜의 섬에서, 그것도 해변의 낡은 여관방에서 맞는 날벼락은 그야말로 공포의 쿵쿵따. 굉음과 광풍과 해조음 뒤섞인 아수라장 속에 창문이 거칠게 흔들리고 억수비가 쏟아졌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다. 태초의 아우성도 때론 소음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는 기록을 중시하는 편이다. 삶의 궤적을 쫓는 증빙이자 언젠가 집필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당초 사박 오일 일정으로 출발한 울릉도 유람은 돌발 상황으로 사흘이 늘어나면서 풍성한 여담을 남겼다. 그 덕분에 죽도를 갔으니 말이다.

아테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신이다. 도시 국가 아테네 수호신이기도 하다. 독수리가 제우스를 나타내듯이 그녀의 상징은 올빼미. 그림이나 동상에는 함께 그려진 경우가 많다. 눈이 동그란 맹금류로 재물을 지키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메타포를 가진다. 나는 아홉 마리 올빼미를 키운다. 물론 먹이는 주지 않는다. 외국 갔다가 모은 각국 소품인 까닭이다.

또한 우리 아파트 베란다 화단엔 주목과 부석이 놓였다. 멀리 울릉도가 고향인 녀석들은 본토로 건너와 동고동락한 애물들.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탄생지가 멀지 않은 땅에 똬리를 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도동항에 닿았을 때의 감회는 예상보다 큰 도서라 느꼈다. 오징어 집산지로 도처에 덕장이 보였다. 산중턱 곳곳에 집들이 산재해 도르래가 중요한 운반 수단. 여전히 그런지는 모른다. 땅값이 엄청 비쌌다. 읍내 노변은 평당 일천 만 원이 넘었다. 지금은 얼마나 나갈지 궁금하다.

태풍을 경험했던 태하는 가장 교통이 불편하고 제일 깨끗한 해역이라 말한다. 마을 뒤쪽에 동남동녀 전설이 어린 ‘성하신당’이 있었다. 울릉도 최고의 성황당. 새로 고깃배를 진수하면 여기서 무사고 풍어를 비는 제사를 올린다. 모 군의원 소유 오징어잡이 배의 제례는 성인봉 등반과 겹쳤다. 두고두고 아쉬웠다. 연중 서너 차례 수확하는 취나물이 도로변에 잔뜩 널렸다.

울릉도는 물이 풍부한 곳이다. 식수 걱정은 하지 않는다. 전력 일부는 수력 발전으로 충당한다. 한데 세 가구가 있는 북동쪽 죽도엔 빗물을 모은다. 농가의 백숙 점심을 먹었다. 후박나무 아래 벤치 풍광이 우아하다.

서달 마을 바위산 위쪽 외딴집에서 신선처럼 사는 남병환 씨. 산머루주 향기로웠고 주목 분재 선물 고맙네요. 귀한 산염소를 잡아 육회를 주신 손익범 씨, 그리고 귀농인 홍대억 씨. 행여 포항 오는 걸음에 커피 한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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