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철 한동대 교수
송화철 한동대 교수

거의 모든 사실은 해석된다. 해석이 필요 없는 사실이란 “저 나무가 건물 오른쪽에 서 있다”처럼 단순하고 사소한 것뿐이다. 심지어 그런 단순한 사실조차 조금 멀리 떨어져서 시야가 흐려지면 해석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나무처럼 보이는 것이 건물 오른쪽에 서 있다”고 하는 말은 이미 사실에 대한 해석이다.

매일 여야 정치인들과 언론들, 그리고 유사언론이 쏟아내는 말들은 당연히 사실에 대한 해석이다. 그 해석은 주어진 사태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런저런 관점에 따라 분석하여 내린 판단의 결과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해석이 아닌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데 있다. 누군가를 친일파라 칭하고 누군가를 공산주의자라 욕하면서, 이런 판단이 그대로의 사실이라 하니 난감하다.

이런 태도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 자신의 해석을 사실로 착각하는 사람은 우선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바로 눈앞에 나무가 건물 오른쪽이 있다는 사실이 진짜인지를 스스로 묻지 않듯이, 자신의 해석이 명백하다고 생각하니 앞뒤 가리지 않고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게 된다.

자신의 해석을 사실이라 생각하면,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한 나무가 건물 왼쪽과 오른쪽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다면 상대는 그 사실을 알고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주장을 사실로 믿는 사람은 상대방을 거짓말쟁이, 사기꾼, 바보로 칭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주장이 사실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전혀 다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우선 나의 해석을 제출하기 전에 과연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남에게 전달했을 때 설득력이 있을지를 생각할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도 사실과 해석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는 경우라면, 엉뚱한 해석을 내놓았다가 망신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게 된다.

또 같은 사실에 대해 여러 해석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각자 자신의 해석이 왜 더 타당하고 옳은지를 증명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해석을 반박하려면 그것을 면밀히 분석하고 오류를 찾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생각이 다르고 서로를 미워하는 관계라도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니 정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

장관의 아들이 휴가를 어떻게 연장했는지, 어쩌다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북한에서 가서 피살되었는지, 국회의원이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모아 신고했는지 설왕설래는 많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 중에 명백한 사실은 많지 않다. 그들의 삶을 몰래 카메라로 다 찍을 수도, 그 머릿속에 들어가 생각을 들여다볼 수도 없으니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의 규모는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파편적으로 드러난 사실들을 잘 엮어 설명하는 좋은 해석이다. 여러 가지 가능한 해석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을 골라내야 한다.

스스로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남들도 그 구분을 하지 않기 바라는 자들이 학계에, 언론에, 국회에, 종교계에 넘친다. 이들은 무작정 목소리를 높이고 억지를 부리며 상대의 말을 막는 데 급급하다. 자신의 해석과 주장을 정교하게 증명하는데 써야 할 에너지를, 상대가 어떤 단어와 표현을 쓰고 어떤 태도로 말했는지 지적하는데 모두 소비한다. 이 사람들이 마구 소리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을 해석해 보면, 이들이 설득의 대상이어야 할 국민을 선동의 대상으로 보고 무시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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