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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추석차례 쉬는것도 현명한 예법"
"올해는 추석차례 쉬는것도 현명한 예법"
  • 오종명, 박태정 기자
  • 승인 2020년 09월 27일 20시 4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9월 28일 월요일
  •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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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 방문 자제 요청하고 벌초·성묘 행사도 최소화
안동·칠곡 종갓집 대부분 '언택트 한가위' 캠페인 앞장
초간 권문해 ‘초간일기’(1582. 2.15일자) “역병이 번지기 시작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송구스러웠다. (家中疫氣方熾。未行茶禮于家廟。極爲未安).

“이번 추석만큼은 차례 쉬는 게 현명한 예법”

올해 만큼은 ‘민족 대이동’ 명절도 포기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고택과 종가들이 모여 있는 안동지역도 마찬가지다. 관련기사 2면

안동지역 대부분 종가는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대신 10월 셋째 주 일요일에 ‘시제’를 지낸다. 과거에는 중구절인 9월 9일(음력)에 시제를 지냈지만, 휴일이 아니면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10월 셋째 주 일요일에 시제를 올린다.

독립유공자 11명을 배출한 임청각 종가도 명절 차례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석주 선생의 현손 이창수(55) 씨는 “26년 전부터 모든 제사를 광복절 하루에 지내고, 추석 차례는 벌초 대행 후 10월 말 산소를 찾는 걸로 대신한다”고 말했다. 1744년 작성된 이 집안의 제사 지침인 ‘가제 정식’에는 “제사상을 간소하게 하라”, “제사 때문에 식구를 힘들게 하지 말라”는 원칙이 전해오고 있다.

이 씨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고려해 처가와의 여행 계획도 잡지 않았다. 그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만 있다면 그 형태는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 하회마을의 서애 선생 15대 종손 류창해(64)씨는 “지난달 30일 서애 선생 아버님 제사에 매년 50명 이상이 모였지만, 올해는 먼 거리에 사는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하고 인근에 사는 후손들만 참석해서 지냈다”며 “추석 명절 차례(중구절)도 안동에 있는 사람들만 모여서 지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종가도 중구절에 ‘시제’를 올린다. 올리는 상도 간소하다. 문어와 고기 등으로 만든 적과 대구포, 과일 한 접시, 떡 한 접시가 전부다. 검소한 삶을 살았던 퇴계 선생의 뜻을 따른다.

류의목 ‘하와일록’(1798. 8.14일자).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하여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痘虎方熾。諸父議定不祭秋夕)

학봉 종택의 김종길 종손은 “매년 50~100명의 문중 어른들과 후손이 각 집안 성묘를 다녀와서 종택에 방문하는데 올해는 규모 조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칠곡에 있는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 선생의 16대 종손인 이병구(68)씨는 “보배야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내려오는 차비까지 두둑하게 용돈으로 보내고 꼭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라” 며 추석명절을 3일 앞두고 컴퓨터를 이용해 화상대화를 하며 딸에게 안부를 전했다. 또 종갓집에서 함께 차례를 지내는 50여 명의 종친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추석 당일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 때는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은 “1500~1700년대 조선시대 역병으로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선비들의 일기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일기에 따르면 예천군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는 ‘초간일기’ 1582년 2월 15일 자에서 “역병이 번지기 시작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하였다”면서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고 적었다.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은 ‘하와일록’ 1798년 8월 14일자에서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하여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기록했다.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 역시 ‘계암일록’ 1609년 5월 5일자에서 “역병 때문에 차례(단오)를 중단했다”고 했다.

예로부터 집안에 상(喪)을 당하거나 환자가 생기는 등 우환이 닥쳤을 때는 차례는 물론 기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조상을 모셔와 대접하는 차례와 기제사는 정결한 상태에서 행해야 하는데, 전염병에 의해 오염된 환경은 불결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처럼 역병이 돌 때 차례를 포기한 이유는 무엇보다 전염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즉 사람간의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여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었던 셈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코로나19는 조선시대 홍역과 천연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파괴력이 강한 전염병”이라며 “평화로운 일상을 하루속히 되찾기 위해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이번 추석에는 차례를 포기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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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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