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편집부국장
이종욱 편집부국장

우리 집은 형제만 6명이다 보니 군대 이야기도 참 다양하다.

큰 형님은 공군하사, 둘째 형님은 육군병장, 셋째 형님은 단기사병, 넷째 형님은 육군일반하사, 나는 해군대위, 동생은 질병으로 인한 징집면제다.

특히 나는 해군소위로 임관해 해군에서 3년, 해병대에서 4년을 근무했으니 대한민국 국군 편제상 모든 군종과 모든 계급체계가 다 모여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와 우리 가족 어느 누구도 군 입대와 관련해 안중근 의사를 떠올려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 현실상 성인 남자 누구든 국방의 의무를 지도록 해 놓았기에 나이가 차면 군에 입대하는 것이 당연한 통과의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우리 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민들이 생각하는 바다.

즉 국방의 의무는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를 지키지 않은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게 올바른 일이란 게 서민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힘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국방의 의무는 서민들과 달리 ‘지키면 자랑거리요, 지키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최근 추미애 장관 아들의 휴가 문제가 제기된 뒤 여권의 한 인사는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爲國獻身)’ 을 소환시켰다.

‘다리를 수술했음에도 군에 입대한 것’과 ‘휴가 후 복귀하지 않은 채 다시 휴가를 간 것’은 엄연히 사안이 다른 부분임에도 말이다.

다리를 수술했음에도 군에 입대한 것은 칭찬할 만 일임이 확실하지만 휴가를 나간 뒤 복귀하지 않은 채 다시 휴가를 간 것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현행 군 복무 규율상 휴가 절차나 제도상 하자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런 일이 모든 군인에게 통용되는 것이라 할 수는 없으니 안중근 의사까지 소환시킨 것은 참으로 넌센스라는 생각을 접을 수 없다.

문제는 정치권이 안중근 의사만 소환시킨 게 아니란 점이다.

올해 들어서만 정치권의 이슈가 나올 때마다 이순신 장군·정조 임금·조광조 등 나라를 구하거나 시대를 이끌었던 나라의 위인들이 소환됐다.

심지어 임진왜란의 전쟁영웅 이순신 장군이 성추행 의혹사건과 관련해 소환됐다는 것은 참으로 참담함을 금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이도 모자라 전직 장관 출신의 인사는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을 ‘계몽군주’로 칭한 것과 관련 “내가 너무 앞선 지식을 갖고 있어서 발생한 일”이라며 자신의 발언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조소를 던졌다.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왜 느닷없이 김정은의 이야기가 나왔는지,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인해 또 다른 논란을 야기시킨 것에 대해서는 참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무엇보다 최근 정치권에서 나라의 위인을 소환시킨 이슈들 전부가 불미한 사건들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누란의 위기에서 자신의 몸을 바쳐 헌신한 일들이 정치판의 노리개가 되기 위한 것이었나”라는 자괴감이 든다.

특히 이순신 장군은 임금과 정치권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음에도 단 12척의 전선으로 130여 척의 왜군을 맞아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죽고자 하면 살 것이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의 정신으로 싸워 이긴 영웅이다.

안중근 의사 역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사형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단 한 치도 흐트러짐 없었던 의연한 분이다.

그런 나라의 위인들을 정치판 위로 끌어올려 왈가왈부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종욱 편집부국장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정치, 경제, 스포츠 데스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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