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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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기 의정부지법에서 특이한 판결 하나가 나왔다. 버스 안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 쪽부터 하반신을 휴대전화로 동영상 촬영을 한 몰카범에 대한 판결이었다. 항소심까지 간 이 재판의 판결은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피해자 역시 이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판결한 1955년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판결과 비슷하다.

레깅스(leggings)는 허리 부분에서부터 발목 부분까지 몸에 꼭 붙는 스타킹 모양의 하의다. 가볍고 신축성이 뛰어난 레깅스는 원래 발레복으로 고안됐지만 에어로빅이나 요가 복장으로 발전했다. 2000년대 초 요가가 유행하면서 요가복의 샤넬이라 불리는 룰루레몬이 일상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는 요가복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여성들이 레깅스를 입은 채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한국에서는 2013년 ‘19금 시구’로 유명한 연예인 클라라의 잠실 야구장 레깅스 시구가 ‘레깅스 패션’이 대중적 눈길을 끈 시초로 보고 있다. 레깅스는 근육운동을 할 때 편할 뿐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 어떻게 변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 효과적이다.

최근 대구 앞산에 레깅스 바람이 불고 있다. 안지랑골에서 앞산 전망대까지 오르는 1.4㎞ 구간은 경사도가 70도를 넘는 가파른 등산로다. 요즘 20~30대 사이에 레깅스를 입고 이 코스를 오른 뒤 앞산전망대에서 인증샷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것이 유행이다. 코로나19 이후 생긴 새로운 문화다. 코로나가 미니스커트 대신 펑퍼짐한 ‘이지웨어(편하게 입는 옷)’를 유행시켰다지만 젊은이들이 레깅스로 반전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등산할 때 살구색 레깅스는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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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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