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 달라” 2020년 9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75차 유엔총회에서 행한 녹화 연설 내용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제안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 차원에서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의 채택을 시도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국면에서 느닷없이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든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상 ‘종전선언’의 성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힘의 균형이라는 중미 간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 및 영토와 관련된 헌법개정 등 국내변수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문에 클라크(Mark W. Clark)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김일성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인민지원군 사령관이 서명했다. 이후 관련 당사국이 정전위원회를 설치하여 동 협정의 시행을 감독하고,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실행기관으로 설치되었다. 정전(armistice)은 교전 당사자 간 합의로 전쟁을 중지하는 상황을 말한다. 종전선언(declaration of the end of war)은 전쟁 당사국이나 관련 국가 간 협정, 합의, 조약 등을 통해 전쟁이 완전히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먼저 중국 변수다. 중국과 북한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다. 1950년 10월 19일부터 시작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은 망해가던 북한을 회생시켰다. 냉전 시대에 소련과 함께 북한의 정치·경제적 버팀목이었고, 2000년대에는 미국의 경제적 봉쇄에서 북한의 생존을 책임졌다. 2001년 17.3%에 불과했던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2011년 63.3%에서 2019년 95.2%로 상승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게다가 북한은 중국에 유일한 이념적 동지로서, 잠재적 적국인 한미일의 최전선에 위치한다. 이런 북한이 종전을 통해 남한과 친밀해지고 미국의 관리를 받는 상황을 중국이 승낙할까?

다음으로 주한미군의 위상 문제이다. 1950년 1월 12일 미국의 태평양방위선에서 남한을 제외한 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미국은 자국 안보의 제1차 방어선으로 남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남한 역시 미국의 안보 우산이 필요했다. 한미방위조약은 두 국가 모두의 필요성에 의해 체결되었다. 미군 주둔의 근거는 동 조약 제4조에 근거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이다. 종전은 전쟁의 종결이며, 평화협정은 적대적 행위의 종료이다. 새로운 근거를 찾아내 주변국의 동의를 얻지 않는 이상, 미군의 주둔을 고집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도래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헌법개정문제이다. 종전이 선언되면 전쟁의 책임을 비롯한 전후 처리가 이루어지며, 이를 바탕으로 전쟁 당사국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수립된다. 남북이 2개의 별개 국가로서 국제환경에 적응해 나간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헌법 제3조가 이러한 상황과 배치된다. 북한 역시 주권 국가인 자국의 영토를 남한의 영토로 규정한 남한의 헌법에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국경선 이남과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방향으로 헌법개정을 추진하면 분열과 혼란은 상상 이상일 될 것이다.

종전으로 남북한이 2개의 국가로 고착되면, 북핵에 대해 간섭하기 어렵다. 북한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반인도적 범죄를 인정해야 한다. 사이버 범죄와 금융 및 은행사기도 묵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통일정책이 폐기되어야 한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2018년부터 시작된 중미 무역분쟁에서 북한의 중국 편들기, 2018~2019년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 불발로 시작된 남북관계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종전을 주제로 미·중 관계개선의 물꼬를 터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전략이라는 의미다. 중국과 북한이 문 대통령이 제안한 퇴로에 탑승할까? 미국의 대중 정책 변화와 남한에 대한 북한의 신뢰도 상승이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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