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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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말 유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실이라고 한다. 자신이 살아 온 삶의 명예를 걸고 가족과 세상, 역사 앞에 고백하는데 빈말이 있을 수 없다. 유언에는 당부나 삶에 대한 회한,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명(順命)의 말을 담곤 한다.

아내가 죽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장자는 “땅 위에 있으면 매의 밥이 될 것이요. 땅 아래 있으면 개미와 지네의 밥이 되겠거늘, 어찌 남의 밥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인류 역사상 해가 지지 않은 첫 번째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은 “성을 쌓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한계에 갇히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말이다. 평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매화에게 물을 정도로 매화를 사랑한 퇴계 이황은 “저 매화나무에 물을 줘라” 말하고 세상을 떠났다.

일제 때 판사였다가 출가한 효봉은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일천강(一千江)에 비치리”라며 눈 감았다. 경봉 선사는 통도사 극락암에서 제자가 “스님 가시면 다시 뵙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뵐 수 있을까요.”하자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아라.” 일갈하고 열반했다. 보통 사람들은 재산이나 자식에 대한 당부의 말을 남기고 눈 감지만 오래 수양한 종교인은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선생복종(先生福終)’으로 생을 내려 놓는다.

지난달 30일 최고령 현역 의사로 활동하던 경기 남양주시 매그너스재활요양병원 한원주 내과 과장이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08년 82세에 재취업하며 병원에서 제안한 ‘명예원장’ 직함도 마다한 내과와 산부인과 전문의다. 12년 간 노년의 환자들을 돌보던 그의 유언은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였다. 거리 두기니, 코로나 블루니 하며 온통 우울한 때에 세상 사람들에게 남긴 선생복종의 아름다운 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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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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