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씻어주는 맑은 공기 들이쉬니 소백산 기운 한껏

금선정 윗쪽에 있는 계양정과 비스듬히 뻗은 노송이 멋을 부린다.

가을빛이 자연을 서서히 물들이는 9월 하순. 오랜 벗들과 소백산 자락에서 그간의 암울한 일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삶의 길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감염증 재확산 등으로 나들이하기가 용이하지 않아 소재의 빈곤을 느끼던 차에 오랜만에 소백산이 있는 풍기(豊基)에 갔다. 포항에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여정으로 너른 소백산 품으로 들어가 산 아래 아담하게 만들어진 펜션에서 모처럼의 편안하고 조용한 안식을 취해본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이 도심에 사는 도시인에게는 꿈같은 그림처럼 보이는 밤을 보내고 이튿날 산골 아침을 맞아 심호흡을 하며 소백산의 기(氣)를 한껏 품었다.

소백산 연화봉 가는길 초입에 있는 출입문이 운치가 넘친다.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m)을 비롯한 연화봉(1,383m), 국망봉(1,420m), 신선봉(1,289m)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대한 산속에 함께 살고 있는 계곡과 폭포, 산사(山寺) 등 어느 하나 명승이 아닌 데가 없는 소백산을 다 돌아보기에는 짧은 일정이라 먼저 연화봉 아래 있는 희방폭포와 희방사로 발길을 옮겼다. 소백산 등반코스로 자주 찾던 곳이라 낯설지 않은 곳이지만 들어서는 초입부터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게 세월이 흘렀음이다.

소백산 국립공원사무소에서 희방폭포와 희방사를 거쳐 연화봉까지는 2.4㎞ 구간에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솔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소리가 모든 번뇌를 잊게 하고 맑은 공기가 폐부를 씻어준다. 우렁찬 물소리에 고개를 들면 저만치 하얀 포말을 거느리며 희방폭포가 시원하게 내려앉는다. 그간 잦은 비로 수량이 많아져 더욱 거센 물길이 일그러진 가슴을 시원히 뚫고 내려간다.

우렁찬 물소리의 희방폭포 모습.

조선시대 석학 서거정 선생이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 하늘이 내려 주신 꿈속에서 노니는 곳이라고 감탄한 희방폭포는 높이 28m, 해발 850m에 있는 영남 내륙의 제1폭포로 손꼽힌다고 한다. 산행객이 거의 없는 텅 빈 산속에서 뿜어내는 산바람까지 자연 속의 하모니로 찌든 군상들을 위로하며 달래준다. 폭포를 뒤로하고 철재로 된 다리를 건너 다시 산길을 조금 오르면 희방사(喜方寺)에 닿는다. 신라 선덕왕 12년(643년) 두운(杜雲)대사가 창건한 희방사에 얽힌 사연이 흥미롭다. 경주 호장(戶長)의 무남독녀가 호랑이에 물려가 화를 당할 뻔했는데 두운대사가 구해주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지어 주어 ‘희방사(喜方寺)‘라 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 조선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이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국문으로 엮은 ‘석보상절’과 석가세존의 공덕을 칭송하여 지은 노래 ‘월인천강지곡’을 합한 ‘월인석보’ 목판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6·25전쟁으로 소실되고 지금은 지장전 벽면에 쓰여 진 월인석보의 내용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희방폭포와 희방사가 소백산을 대표하는 명승지 중 하나로 그리 힘 들이지 않고 접할 수 있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희방사와 희방폭포를 둘러보고 다시 풍기로 내려와 유명 맛 집으로 소개받은 풍기역 앞 청국장 전문집 ‘한결식당’에서 인삼막걸리를 곁 드린 맛깔스런 점심을 들고 영주 선비촌으로 향했다. 이름난 선비촌에도 사람이 없다. 때마침 내리는 비 때문에 선비촌 탐방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숙소부근 마을을 둘러봤다. 이곳이 조선시대 예언서로 유명한 ‘정감록(鄭鑑錄)’에 나오는 ‘십승지(十勝地)’중 제1승지인 ‘풍기 금계촌’이라 더욱 흥미로워 졌다.

십승지라 불리는 풍기 금계촌(金鷄村), 봉화 춘양면(春陽面), 보은 운봉(雲峯)두류산, 예천 금당동(金堂洞), 공주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 영월 정동상류(正東上流), 무주 무풍동(武豊洞), 부안의 변산(邊山), 성주 만수동(萬壽洞) 등으로 삼재(三災 : 전쟁, 재해, 전염병)를 모르고 살 수 있는 명당 중의 으뜸을 일컫는다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금계마을은 큰 재난을 당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고 마을 사람들이 전하고 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을하늘 높이 외롭게 떠있는 흰구름 한조각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음날은 맑은 가을 하늘에 조각구름 하나가 외롭게 떠 있는 청명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서둘러 십승지의 제1승지 금계마을을 출발하는 ‘소백산 자락2길’, ‘승지의 길’을 따라 금선정(錦仙亭)과 금계지(錦溪地)를 돌아 삼가리까지 갔다 되돌아 올 예정으로 숙소를 떠난다. 장선마을이라 불리는 금계2리에서 금계저수지까지 1.5㎞에 걸쳐 형성된 계곡인 금선계곡에는 기암괴석과 노송이 우거진 빼어난 경관을 보이고 중간지점 절벽 위에 금선정이 자리하고 있는 정자 주변 경관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정자 아래 널찍한 반석을 금선대(錦仙臺)라 부른다. 금계마을 출신인 유학자인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이 이름 지었다고 한다. 금선정 옆 마을길 가에 또 하나의 정자가 있다. 계양정(桂陽亭)이라고 이름이 붙은 정자 앞에 비스듬히 길게 뻗은 노송이 한껏 멋을 부리며 탐방객을 맞는다. 내려다보이는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시원함을 더해주고 따가운 햇살을 어루만지며 ‘소백산자락길’의 멋을 더욱 뽐내고 있다.

소담스럽게 세워진 ‘소백산자락길’ 간판 아래 수줍은 듯 피어난 나팔꽃 붉은 잎이 시름을 잊게 하고 금계지 가는 길을 정겹게 만든다.

금계지 오르는 계단 아래 너른 풀밭에 텐트를 친 야영객이 널어져 쉬고 있고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세워진 운동기구들이 졸고 있다.

계단을 한참 올라 마주한 금계저수지가 이름 그대로 ‘비단결 같은 물결’을 이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환영한다. 너른 저수지 상류 쪽 우뚝 솟은 봉우리가 소백산 최고봉 비로봉임을 알 수 있다. 비로봉 좌우로 소백연봉이 저수지를 굽어 내려 보는 듯 사위가 조용하고 적막한 가운데 한 무리 흰 구름이 소백연봉 위로 꽃처럼 피어오른다. 금계지 초입에 세워둔 소백산자락길 표지석에 이런 문구가 눈길을 끈다.

소백산자락길 표지라벨.

‘소백산자락길은 종합병원이요. 당신의 두 다리가 의사입니다’

더 이상 좋은 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걷는 게 보약이다’라는 말이 실감 나는 시간이다. 소백산자락길은 소백산 둘레 143㎞(360리)를 열 두 자락으로 나누어 자락마다 12㎞(30리)내외로 3~4시간 소요되도록 구성되어 있어 하루를 쉬엄쉬엄 한 자락씩 탐방할 수 있고 나름대로 특색 있게 꾸며져 있어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선정 ‘문화생태탐방로’로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며 2011년 ‘한국관광의 별’로 등극하였다고 설명한다.

또한 소백산자락길은 경북 영주시, 봉화군, 충북 단양군, 강원 영월군 등 3도의 4개 시군에 걸쳐 다양한 볼거리와 소백산국립공원을 끼고 자연환경이 어느 곳보다 잘 정비되어 걸어서 힐링하고 역사와 문화를 마음껏 접할 수 있는 탐방길이다. 또한 명산과 대찰을 품고 있어 등산과 관광을 겸할 수 있는 곳으로도 이름나있다.

멋진 풍광을 만들고 있는 소백산 자락의 펜션하우스 모습.

금계마을에서 소백산 비로봉 초입인 삼가동까지 가는 자락2길을 금선계곡과 금계지 주변의 아름다움에 빠져 삼가동까지 못가고 돌아 갈 길이 바빠진다. 금계지 주변에 아름다운 펜션들이 그림처럼 들어서 있고 멀리 소백연봉의 장대함이 함께하는 소백산자락2길(승지의 길)을 혼자 두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가야 함을 어찌 할고.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는 글에 이런 문구 있어 여기 인용해 본다.

-소백산자락길은 자락하는 길이다.

깊은 골 따라 물소리 들으며 가지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기분 좋게 바라볼 수 있고, 여러 들꽃들을 즐길 수 있다.

자연은 우리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한다 -

정말 산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맞는다는 신념을 오랫동안 지니고 살아온 필자도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렵사리 찾은 소백산자락에서 또 한 번 삶의 의지를 느끼며 ‘걸어서 자연 속으로’ 열네 번째 ‘힐링 앤 트레킹’ 이야기를 마칠 수 있어 기쁘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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