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여국 동참한 공동 구매·배분 ‘코백스’ 가입 선언
중 “백신은 공공재”…세계백신면역연합 “불가능이 현실로”
미국 리더십 실종 속 “중 소프트파워 승리” 평가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저개발국에도 보편적으로 배급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이하 코백스)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세계 보건계 지원을 축소하는 등 리더십 공백을 노출한 가운데 나온 조치로 주목된다.

9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중국이 세계백신면역(GAVI)과 협약을 맺고 코백스에 정식 가입했다면서 “이는 인류의 위생과 건강을 지키고 백신을 전 세계 공공재로 이용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화춘잉 대변인은 “현재 코로나19는 여전히 전 세계에 유행하고 각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면서 “개발도상국들이 백신을 얻을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중국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완료한 뒤 전 세계 공공재로 개도국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를 위해 코백스에 가입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화 대변인은 “중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 국제적으로 앞서 있고 충분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실제 행동으로 백신의 공정한 분배를 촉진하고 역량 있는 국가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기 위해 코백스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코백스는 백신을 세계 인구의 20%에게 균등하게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세계보건기구(WHO), CEPI(감염병혁신), GAVI 등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들은 2021년 말까지 전 세계에 20억회분 이상의 백신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프로젝트의 규모는 180억 달러(약 20조7천억원)에 이른다.

코백스 구상에는 무려 171개국이 동참하고 있으나 세계 경제 1, 2위국인 미국과 중국은 그동안 참여하지 않았다.

세스 버클리 GAVI 대표는 로이터 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모두 코로나19 백신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는 몇달 전에 불가능한 난제로 보였으나 이제 현실이 돼가고 있다”고 중국의 가세를 반겼다.

중국이 가입 마감이 3주 정도 지났음에도 이날 전격적으로 참여를 선언한 것은 미중 갈등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눈도 사로잡았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통상, 안보, 인권 등에서 전방위로 반목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를 국제사회 주도권 경쟁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의 이날 코백스 참여는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도 오히려 국제 보건계를 외면하고 위축시키는 미국 정부의 태도와 상반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WHO가 중국에 편향적이라며 재정 지원을 축소하고 지난 7월에는 WHO에 탈퇴까지 통보했다.

미국 정부는 같은 이유로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저개발국에 대한 인도주의 성격이 있는 코백스에 대한 참여도 거부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은 부패한 WHO와 중국의 입김을 받는 다자주의 조직으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겠다”며 불참 사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 코백스 동참 선언으로 중국은 그간 국제사회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 온 미국의 공백을 메우는 모양새를 취하게 됐다.

올해 5월에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이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은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글로벌 공공재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의 이 같은 행보가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작년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武漢)에서 코로나19가 발병했을 때 실태를 은폐해 다른 국가들의 대응을 지연 시켜 전 세계 창궐을 불렀다는 비판받고 있다.

홍콩시티대학에서 보건과 안보를 연구하는 니컬러스 토머스 교수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여러 면에서 볼 때 이번 건은 중국의 소프트파워 승리”라고 말했다.

토머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인 WHO 탈퇴 결정과 근시안적 코백스 거부 때문에 중국의 승리가 더 쉬웠다”며 “이제는 미국이 이 분야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중국 따라잡기로 간주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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