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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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가는 저 길손 말 물어보세. 한로(寒露)철 풍악(楓嶽) 풍광 곱던가 밉던가. 곱고 밉기 전에 아파서 못 노닐레라. 가지 마오, 가지 마오, 풍악엘랑 가지 마오. 만산홍엽(滿山紅葉) 불이 붙어 살을 데고 오장이 익어 아파서 못 노닐레라, 못 노닐레라.”

옛날 서민이 불렀던 잡가(雜歌)의 가을 금강산(풍악) 단풍유람 대목이다. 붉게 타는 단풍에 화상을 입는다는 감각적인 표현이 절창이다. 어떤 시인이 이렇게 단풍의 아름다움을 살갑고 절실하게 읊을 수 있을까 싶다.

살을 데고 오장이 익는다는 금강산 단풍은 국토가 분단돼 아예 보지 못하지만 그 연맥(連脈)인 설악 단풍도 올해는 반만 즐겨야 할 지경이다. 설악산 단풍은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돼 단풍전선이 하루에 산 아래로 40m씩 내려오고, 위도상으로는 남쪽으로 25㎞의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 이런 속도로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남부지역 큰 산에도 10월 중순 이후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것이다.

옛날 음력 9월 9일 중양절엔 산에 올라 단풍나무 가지로 비녀를 깎아 아내에게 꽂아주는 ‘풍잠(楓簪)’ 풍속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시집살이로 쌓인 우울증이 싹 날아간다고 여겼다. 썩은 단풍나무에 나는 버섯을 웃음 버섯 ‘소심(笑蕈)이라 한다. 옛 문헌에 소심을 잘못 먹으면 해롱해롱 웃어댄다는 기록이 있는데 풍잠도 이 웃음현상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단풍은 이렇게 스트레스 해소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올해 환경부는 되도록 단풍구경을 삼가라며 사상 초유의 ‘코로나 단풍지침’을 발표했다. 국립공원공단이 설악산 울산바위, 지리산 바래봉 등 21개 국립공원 58곳의 인기 단풍 탐방지에 대해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코로나19가 전통적 스트레스 해소제인 단풍구경까지 막고 나선 것이다. 대신 ‘비대면 단풍놀이’를 권하고 있다. 공원공단이 유튜브로 단풍 영상을 생중계한다니 코로나블루 해소는커녕 되레 단풍 감질(疳疾)이 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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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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