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씨가 등산곶 부근에서 북한군에 사살되었다. 9월 28일 해양경찰청의 중간 수사결과를 보면, 이씨는 월북을 목적으로 북한 해역까지 간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씨의 형은 시종일관 동생을 “사명감이 강했던 공무원”으로 평가하면서, 자진 월북 가능성을 일축한다. 10월 8일 아들은 “아버지는 자진 월북자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국방부, 국정원, 해양경찰은 자진 월북으로 단정하는 분위기지만,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언론과 국민도 적지 않다. 자진 월북이냐? 표류나? 희생자와 가족의 명예뿐만 아니라 국가의 신뢰까지 걸린 사안이다. 더하여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다.

해경이 내세우는 정황증거는 의미가 없다. 먼저 자진 월북 동기로 내세운 채무와 이혼이다. 이씨의 전체 채무는 3억3천만 원 정도이다. 47세의 공무원 봉급과 적립된 연금을 고려하면 남한에서 삶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2019년 한해 이혼이 11만 8백여 건에 이를 정도로 이혼은 흔하다. 이혼을 대하는 사회적 편견도 완화되었기 때문에, 이혼숙려기간이라는 상태는 자진 월북의 근거로 미약하다. 게다가 동료 공무원들과 무리 없이 지냈고 근무도 잘해 주변의 평판도 괜찮았다는 이씨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9월 24일 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장 브리핑). 무엇보다 미성년의 자녀 2명이 있다는 상황이 채무와 이혼이라는 자진 월북의 동기를 더욱더 약화한다. 보통의 아버지는 삶에서 부닥치는 고통으로 자녀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월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이다. 구명조끼 착용은 자진 월북을 대비한 거다? 이씨는 해양수산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일등 항해사이다. 조타실에서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동료의 증언이 있다고 하지만, 갑판에서 활동할 때 구명조끼 착용은 당연하다.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거로 봐서 월북을 작심한 듯하다? 신발은 업무용 안전화나 운동화가 아니라 슬리퍼였고 선박에 놓여 있는 밧줄 더미 속에 있었다. 부유물을 이용한 거로 봐서 월북을 준비했다? 1m 정도로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부유물을 월북준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조류가 반대라서 표류 가능성이 작다? 개인 1인이 부유물을 타고 38km를 헤엄쳐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른 요인이 없다면, 해경의 자진 월북 판단 근거는 대단히 허술하다.

해경이 내세우는 자진 월북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이다. 우리 군과 미군이 감청한 자료를 분석했는데, 이씨가 월북 의사를 표현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씨의 자진 월북이 증명된다면, 지금까지 위에서 지적한 해경의 조사는 무용지물이다. 자진 월북의 원인과 증거를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한미 공동첩보 자산인 특별정보는 군사기밀이라는 점이다. 이를 공개하면 북한이 감청에 대비하기 때문에 앞으로 대북 정보수집이 어려워진다. 그래도 이씨의 형과 아들의 눈물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불신해소를 위해 감청 내용을 확인하기는 해야 한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확인하고, 감청 내용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는 방법이 적절하다. 물론 관련 사항에 대한 함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후속 조치는 문책이다. 9월 21일 낮 12시 51분 이씨에 대한 실종신고가 해양경찰에 접수되었고, 우리 군이 22일 오후 3시 30분 북한군과 대치 중인 이씨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후 4시 40분 이씨로 특정했으며, 오후 10시쯤 이씨의 사망을 인지하고 11시쯤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에 알렸고, 23일 오전 8시 30분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실종신고 시점부터 군이 이씨를 발견하기까지 26시간 40분 동안 행방을 찾지 못한 해양경찰 수뇌부, 이씨 발견을 기점으로 6시간 30분 동안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군 지휘관, 이씨의 사망을 알고도 9시간 30분 동안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청와대 비서진을 문책해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한 수색과 보고체계에 대한 개선책 발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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