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한 사람의 기억을 살리고
그 한 사람으로 되돌아간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당신을 기억해 온 그 사람이 끝내
기억을 놓아주었기 때문이다
기억은 방랑했고
망각을 유랑했고
혹독한 타인을 지나
더 이상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초췌한 기시(旣視)가 되어
지상을 떠돌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을 비워 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면
이미 잊힌 사람이
누군가의 첫인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감상>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필라멘트다. 필라멘트가 켜지면 기억이 환하게 밝아온다. 나도 그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 기억들이 시간을 초월해서 다가온다. 좋은 기억들이라면 마음이 환하고, 어두운 기억들이라면 그림자가 진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기시감마저 사라지고 지상 어디에선가 떠돌고 있을 터. 아마 그 사람도 나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러할 것이다. 특히 첫사랑은 더욱 그러하다. 이미 잊힌 그 사람은 누군가의 기시(旣視)가 되어 첫인상으로 각인되고 있을 것이다. 기시가 사라진 형태가 첫인상이지만, 첫인상 또한 기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 손창기>
- 기자명 윤성택
- 승인 2020.10.13 16:54
- 지면게재일 2020년 10월 14일 수요일
- 지면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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