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편지에서부터 인사하는 말까지 아무리 작은 분량의 글이라도 글을 쓰고 난 뒤 반드시 다시 읽고 고치는 과정을 거친다.

글쓰기의 과정이 계획하기, 내용 생성하기, 내용 조직하기, 표현하기, 고쳐 쓰기로 크게 대별할 수 있듯이 고쳐 쓰기 단계를 꼭 거쳐야 완성된다. 그만큼 고쳐 쓰기 단계가 중요하다.

소설 춘향전에도 행인 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이란 말이 나온다. 편지를 전하러 가는 출발 직전에 다시 봉투를 열어 잘못된 곳이 있는지 확인한다는 말이다. 이 글쓰기의 마지막 단계를 퇴고(推敲)라고 한다.

당나라 때 가도(賈島)란 사람이 처음 과거를 보러 장안에 가던 길에 하루는 나귀 등에서 ‘새는 못가에 있는 나무에 깃들이고 중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두드린다는 글자에 ‘推’ 자를 쓸까 ‘敲’ 자를 쓸까 결정을 못 하고 나귀 위에서 때때로 손짓으로 밀거나(推) 두드리는(敲) 동작을 하니, 보는 사람마다 이상하게 생각했다.

때마침 경윤(京尹) 벼슬에 있던 한유(韓愈)의 행차를 만났는데, 가도는 그 행차 대열의 안까지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좌우의 사람들이 가도를 붙들고 한유의 앞에 끌고 갔다. 가도는 시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유도 말을 세워놓고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敲’ 자가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이때부터 글을 쓰고 난 뒤 고치는 것을 퇴고라고 하게 되었다.

어디 글쓰기뿐이겠는가. 모든 일의 마무리 과정에서 잘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정리해 간다. 해놓고 보면 마음에 들 때도 있고, 영 아니다 싶을 때도 있고, 그런대로 됐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되돌려 보완할 수 있다면 보완하고 바꿀 수 있으면 바꾸어야 한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점검해 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 자신의 언행을 다듬어 나가고, 사업을 다듬어 나가고, 인생의 의미나 목적도 수정해 나가야 한다.

그러니 인생을 다 살아놓고 뒤돌아보아 후회할 것이 아니라, 중간 점검으로 자신의 인생 항로를 수정하여 삶의 가치를 높여가야 한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못 미치더라도 적어도 진흙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이렇게 인생살이 과정에서 자주 중간 점검을 하고 자신의 가는 길이 바른길인지 확인해 가는 것을 ‘인생 퇴고’라 말하고 싶다.

나 자신을 뒤돌아보니 억지스러운 적이 많았다. 어떤 일을 시작해 놓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도 그대로 밀어붙였다. 분명 잘못된 것을 예감하면서도 끝까지 밀어붙인 적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충고를 듣지 않은 적도 있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줏대도 아니고 자존심도 아닌데. 그때그때 점검하여 올바르게 수정하며 살아도 모자랄 인생 아닌가.

요사이 사회 지도층에서 일하는 높은 분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새삼 ‘인생 퇴고’의 필요성을 느낀다. 살아온 길에 잘못이 있었으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고 고치면 될 것을. 끝까지 감추려 들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옳지 않지만 부정하거나 감추려 드는 것은 더 나쁘다. 옆에서 덮어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도 불쌍해 보인다. 세상에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완전하다면 그것이 거짓말이다.

차선이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고치는 일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면, ‘인생 퇴고’에 덧붙여 용서하는 삶을 권장하고 싶다. 남의 잘못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생 퇴고’와 더불어 잘못을 용서하는 너그러움이 소중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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