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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삼경(三更)에 눈을 뜨니
[데스크 칼럼] 삼경(三更)에 눈을 뜨니
  • 곽성일 편집부국장
  • 승인 2020년 10월 18일 18시 5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0월 19일 월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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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편집부국장

 

‘삼경(三更)에 눈을 뜨니 가을이 숨을 죽이고 있다.

사방은 고요하고 옅은 어둠이 숲을 감싼다.

밤새 가을은 한로(寒露)를 맞이하고

나뭇잎은 찬 이슬에 단풍들 준비를 한다.’

가을이 깊어간다. 어느새, 찬 이슬이 내리는 한로(寒露)이다. 곧 찬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이 다가온다.

밤새 찬 기운이 소리 없이 내리고, 가을은 정적에 휩싸였다.

깊은 새벽,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 자지러지다가 바람결따라 멀어진다.

모두가 잠든 시간, 누가 황망한 시간을 맞이하고 있을까?

밤새 불청객 역병이 찾아온 것일까.

코로나로 잃어버린 가을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추수에 대한 감사와 가을 색의 감동으로 맞이해야 할 가을이 아니던가

곧 백두에서 설악으로, 한라로 이어질 가을 단풍 물결의 감동을 마스크 안으로 삼켜야 한다.

다가오는 가을, 지나가는 가을을 그저 눈짓으로만 맞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가을을 가을이라고 환호하지 못하는 불임(不姙)의 가을이다.

가을엔 추수를 앞둔 황금 들녘엔 풍년가가 울려 퍼져야 하고, 단풍 든 산하엔 감탄의 환호성이 물결쳐야 한다.

산사의 범종 소리는 멀리 울려 퍼지고, 마침내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한 가족은 따뜻한 저녁상에 모여 앉아야 한다.

가을밤엔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고, 깊어가는 가을을 아쉬워해야 한다.

코로나는 인간을 가을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가을이 왔으나 가을이지 못하다.

가을 속으로 성큼 걸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살피는 코로나 가을을 맞이했다.

자연에 감탄하는 예전의 가을이 아닌, 코로나로 인간을 경계하는 계절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가을에 길을 잃어버렸다.

익숙한 길을 걷는데도 발걸음이 불안하다. 마치 다른 길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두려움이 몰려온다.

눈을 가졌으나 코로나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물어볼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구원의 신도 대답이 없다.

확신을 갖지 못하고 걸어가는 길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현재의 절망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맹수 같은 코로나가 언제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발걸음은 빨라진다.

쫓기는 발걸음은 쉬이 지치게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힘에 부쳐 주저앉을 수도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은 울음을 삼키고 정신은 혼미해진다. 더 이상 길을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좌절에 나를 맡겨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좌절은 희망을 잉태한다. 희망은 좌절의 끝에서 나온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분명 예전의 익숙한 길임을 알아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누군가를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나는 왜 불안해하고 있는가, 이 길은 오랫동안 걸었던 길이 아닌가.

유령 같은 코로나로 인한 불안한 생각이 삶을 바꿔놓고 있다. 생각은 생각일 뿐, 그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나는 생각이 아닌 생각 이전의 존재이다.

‘캄캄한 밤도 오래 걷다 보면 새벽이 온다’고 하시던 한글운동가 경주 최햇빛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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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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