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다리다 일생이 다 떠나버리고
하려던 복수도 떠나버리고
그토록 다르던 너희들과 함께 같은 침대에 누워
기다리던 사람이 오지 않는 것도 상관없는 또 알뜰히 지워지는 하룻잠을
당신에게 청하여 본다
심각한 얼굴은 마라 말도 말아라 꿈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심야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래놓고도 울리는 벨소리가 핏줄처럼 질긴 건
못할 복수로나마 나를 청하는 걸 안다
나를 기다리다 너희들이 되고 너희들은 있지도 않은 나를 요청하여
누구로서도 풀지 못할 사나운 꿈자리가 되는 걸 안다
그래 알기를 원했던 건 오직 내가 올 것인가 와서 너희들과 더불어
지금 없는 나를 낳아주는 거였다
당신이 나를 놓아주는 거였다
물결이 주름을 떠밀어버리고
문설주에 기대앉은 먼지에게 나를 입혀주는 것이었다
내가 와서, 하지 못한 일생 동안의 복수를
당신의 이름으로 사하여 주는 것이었다
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일생.


<감상> 오지 않는 당신이 있었기에, 오래 복수하려고 마음먹었기에, 너를 기다리지 않고 나를 기다리는 것이 되었다. 단 하룻밤이어도 좋을 꿈을 꾸었기에 소식 없는 너를 기다리고 나를 요청한다. 꿈자리에서만 존재하는 수많은 꿈들을 지금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가는 거다. 일찌감치 당신이 나를 놓아주었는데, 내가 당신을 놓아주지 않았기에 물결의 주름처럼 떠밀려온 거다. 일생 동안의 복수가 남아 있었기에 당신이 존재했고, 당신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있는 거다. 오히려 사랑에 목숨을 다 걸지 않았기에 영원 쪽으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거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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