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출신 신태식 의병을 기리는 ‘충의각보존회(회장 이동진)’는 지난 20일 문경시 가은읍 민지리 충의각에서 신태식 의병장 향사를 봉행했다.

향사는 코로나19 전염을 막기 위해 분향만 올리는 방식으로 간략하게 진행했다.

신대식 주손은 “불편한 장소에서 향사를 올려 주신 어르신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하고, 내년에는 좀 더 잘 모시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태식 의병장은 1864년(고종 원년)음력 11월 22일, 문경시 가은읍 민지리 섬안마을에서 태어나 1902년 내부주사 통훈대부 중추원 의관을 역임했다.

1895년에 밀정혐의가 있는 가은면 김골패와 상주 강용이 등을 농암장터에서 총살하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의병을 모집해 대일 항쟁에 나섰다.

1907년 8월 3일 단양에서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여 도대장에 취임하고, 울진, 영해, 영양, 영월, 산동, 제천, 원주, 홍천, 철원 등지에서 활약했다.

그의 휘하에는 도선봉 김세영, 좌선봉 강창근, 중군 유제칠, 참모 엄해윤, 영솔 조수안, 별포 김운선 등이 있었다.

1908년 홍주전투에서 물러나 횡성으로 퇴각할 때 적탄에 맞아 어깨에 부상을 입고도 양주, 산안전투에 참전, 왜장 장삼랑을 사로잡아 총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다가 12월 14일 영평, 이동전투에서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역부족으로 적에게 잡혔고, 1909년 12월 16일 내란강도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며, 상고해 10년형으로 감형됐다.

1918년 1월 19일 경성감옥에서 10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감한 후에도 3.1만세운동 참여, 상해 임시정부 경상북도 조선독립 후원의용단장으로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고, 그 일환으로 동지규합,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22년 12월 28일 대구감옥에 수감됐다.

이후 1924년 6월 5일 출옥한 뒤에도 계속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32년 1월 15일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국민장 추서, 2003년 9월 생가를 현충시설로 지정했으며, 경상북도는 이를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했고, 문경시는 2017년 3월 31일 생가를 복원했다.

신태식 의병장이 지은 가사 ‘창의가’는 대학 수능시험에 출제될 정도로 당시 우리나라 상황과 일제에 항거는 의병들의 마음을 잘 담고 있다.

황진호 기자
황진호 기자 hjh@kyongbuk.com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