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수 대구본부 취재부장

주자학의 대가 퇴계 이황은 1501년 11월 25일 종일품 벼슬의 좌찬성 아버지 이식과 어머니 춘천 박씨 사이에서 여덟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과부 자식은 배운 게 없고 버릇 없다’며 따돌림을 받을 까봐 엄한 교육을 한 어머니는 논밭 농사와 양잠으로 어렵게 살림을 이어갔다. 어린 퇴계에게 공부에만 치중하지 말고 몸가짐과 행실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가르침도 줬다.

학문적 대업을 이룬 퇴계는 어머니의 묘비문에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문자를 모르셨다”고 적었다. 이런 가르침 덕분에 퇴계의 가족 사랑은 남달랐다. 심지어는 둘째를 출산하고 젖이 모자라 고심하던 손자가 갓 출산한 여종 학덕을 젖어미로 보내달라고 하자 퇴계는 “남의 자식을 죽여 내 자식을 살리는 것은 매우 잘못이고 신분의 차이는 있으나 생명에 차별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거절했다. 증손자는 결국 두 돌 지나서 목숨을 잃었다.

79차례나 사직상소를 올릴 정도로 벼슬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추구한 퇴계는 평생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과 학문을 닦아 후세에 도를 전해 주는 것을 추구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엄마·아빠 찬스 논란이 여전하다. 최근에는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아들 특혜 의혹에 대해 엄마 찬스라는 역공을 펼치고 있다. 글도 모르던 퇴계 어머니의 가르침과 대비된다.

퇴계 선생의 16대 종손인 89세의 이근필옹을 만났다. 대화 내내 무릎을 꿇은 그는 친필 글씨와 부채를 내밀었다. ‘은악양선(隱惡揚善)’을 통해 ‘조복(造福)하자’고 당부했다. 남의 흉과 허물은 입에 담지 말고, 남의 선행은 드높여서 내 몸에 지니도록 하자는 말이다.
 

배준수 대구본부 취재부장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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