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감사원이 월성 1호 원자력 발전소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놓은 후 후폭풍이 거세다. 감사원은 산자부와 한수원이 월성 1호기의 향후 경제성을 일부러 낮게 추산하였다고 평가하면서도, 발전소를 폐쇄한 결정은 적정성은 평가할 수 없다는 오묘한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야당과 원전 찬성론자들은 이번 감사 결과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원자력 관련 정책이 정치적 결단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원전의 경제성을 낮게 조작한 것도, 애당초 경제성만 따로 떼어 감사를 한 것도, 또 그걸 기화로 비판을 쏟아내는 것도 모두 이 사안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탈원전 정책의 결정은 여론과 선거, 투표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원전의 건설과 가동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재원의 규모가 크고, 가능성은 낮지만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 사고의 위험이 있으며, 핵폐기물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원전 고장과 비리에 더해 큰 지진까지 일어난 마당에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만 년 후에나 확인이 가능한 기술적 안정성이나 경제성에 대한 기대와 장담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혹자는 ‘정치적’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파악하여 전문가가 결정할 일을 일반인의 기분이나 누군가의 선동에 따라 정할 수 없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전문가가 뽑아야 한다.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시민이 집단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공산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정당마다 중요 이슈에 대한 입장을 정하고 시민의 선택을 구하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이 정치의 문제라면, 찬반 입장을 떠나 관련 전문가와 정치가의 책무는 시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설득력 있게 제공하는 것이다. 원전 찬성론자들은 오늘날 원자력에 대한 불신을 환경단체의 선동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 몇십 년 동안 기득권을 누리면서 그런 선동에 ‘당했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능해 보인다. 오히려 그 원인은 대국민 설득을 방기한 자신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 한 예로, 이번 감사원 발표 직후 라디오 대담에 나온 한 인사는 탈원전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상대 패널에게 “뭘 모른다”는 발언을 반복했다. 그러나 “넌 무식하니 가만히 있고, 나만 믿고 따르라”는 낡고 무례한 태도는 스스로의 설득력만 반감시킬 뿐이다.

원전은 건축, 운용, 폐쇄, 처리 모두 오래 걸리는 기술이기에, 이번 정권의 탈원전 정책이 치명적이라는 주장은 엄살이다. 정책이 선언되었을 뿐, 없어진 원전은 설계수명이 지나 연장된 기한조차 얼마 안 남은 월성 1호기 하나이고 지금도 새 원전을 짓고 있다. 몇몇 원전 건설이 중단되어 생긴 손실은 과거 정권들이 온갖 비리로 끼친 손해에 비해 크지 않다. 지금 시민을 설득하면 정권도 탈원전 정책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런데도 원전 찬성론자들은 아직도 오만하고 게으른 태도를 버리지 못한 채 “그것 봐라” 식의 비난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상황판단 능력마저 잃은 것인가.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정책을 정권마다 바꾸는 것은 낭비가 맞다. 그러나 정책변경으로 생기는 기회비용에 대한 최종 판단도 국민이 한다. 이미 원전에 돈을 많이 들였으니 앞으로도 돈을 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기득권자의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일정한 낭비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권과 정책을 변경할 계기를 정기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런 기득권의 폐해가 기회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탈원전이 싫다면 빨리 고장난 라디오를 버리고 대 시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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