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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자원봉사활동 1000시간을 자축하며-1
[독자투고] 자원봉사활동 1000시간을 자축하며-1
  • 김태원 포항 세명고 교사
  • 승인 2020년 10월 25일 15시 57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0월 26일 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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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포항 세명고 교사
김태원 포항 세명고 교사

(사)늘푸른마음회라는 봉사단체가 최초로 설립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1년 4월이다. 물론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 20년간 줄기차게 활동을 진행해 왔다. 초기 환경정화 활동만 해 오다가 2003년 9월 포항 환여동에 저소득층 자녀 무료공부방을 개설했고, 5명의 전문분야 선생님이 힘을 합해 저녁마다 돌아가면서 자기가 맡은 과목을 지도했다. 저는 당시 과학 과목을 전담했으며, 저소득층 자녀들을 발굴해서 지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세명고와 공부방이 위치한 장소가 너무 멀어서 고민도 많았던 시기도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야학을 지도하러 가면 최소 저녁 7시에 현장에 도착해 2시간 지도하고 집에 가면 완전히 파김치가 될 때도 있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학생들을 지도해 오다가 열악한 이 환경을 극복해보고자 시작한 일이 제대로 된 공부방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2005년 12월엔 늘푸른마음회를 사단법인화했다. 즉 (사)늘푸른마음회(여성가족부 산하 법인)가 된 것이고 이때부터 봉사활동도 체계가 잡히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원들끼리 의기투합해 늘푸른마음회지역아동센터(2006년 10월 포항시 인가)를 설립했다. 2층 건물(40평) 규모로 설립했으며 당시 건물을 지을 때도 돈이 없어서 은행 돈을 빌려서 땅을 구입하는 데 5000여만원, 건물을 올리는 데 9000여만원, 땅 사고 건물 올리는 데만 총 1억4000만 원 정도의 돈이 들어갔다. 물론 이 건물을 올리는데 들어간 자금은 전부 연대보증으로 은행 빚을 내어 건물을 올린 것이다. 건물을 올려놓고 학생들을 맞이하기 전까지 내부 수리는 전부 회원들의 몫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아동센터로 바로 퇴근해 자정까지 일하고 집에 간 적도 다반사였다. 물론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함께 한 회원들 모두가 일심으로 미친 듯이 공부방 마련에 ‘올인’한 결과 2007년부터 학생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2007년 9월엔 기획재정부 인가 공익성

김태원 포항 세명고 교사가 2017년 8월 12일 물난리가 난 충북 청주를 늘푸른마음회와 포항시자원봉사센터 회원 봉사자들과 함께 방문해 봉사활동 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기부금단체로 지정됐고, 이때부터는 후원회원 모집에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월 1만 원 이상 늘푸른마음회 혹은 늘푸른마음회지역아동센터에 기부금을 보내주는 회원이 조금씩 늘어서 회의 제정에 도움이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2년마다 한 번씩 1일 호프를 진행해 자금을 확보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으며, 이제는 은행 빚을 다 청산하기도 했다.

2017년 8월엔 충북 청주시에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가 났다. 청주시 전체가 물에 잠겼고, 저지대 가정엔 물이 방까지 차서 가정의 도구 모두가 쓸 수 없게 됐다. 또 역시나 청주시의 저소득가정 할머니·할아버지가 계신 곳을 중심으로 포항시 자원봉사센터에 자원봉사 요청이 들어왔다.

도배 봉사이며 이 활동에 늘푸른마음회 회원 4명도 의기투합해 40명이 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청주시로 향했다. 저소득가정 여덟집을 도배해 주고 장판을 새로 깔아 드리고 내려온 경험도 있다. 마지막에 할머니와 사진을 찍고는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을까요?”라고 하신다. ‘건강하게 100세까지 사시는 것이 저희를 위하는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돌아왔다. 이때가 2017년 8월 1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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