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엔 저 천공(天空)으로 뻗으려는 절정이 없다
오직 발알로 깎여 떨어진 천인(千?)의 나락

어느 짬 우주의 윤회에서 생긴 지락(地落)이
오오랜 햇살과 비바람을 겪고
스스로 한 풍모를 갖추었나니

한 줄기 푸른 칡도 기어오르지 못하는
천년의 절망에 지끛이 늙어
이 우울 무사한 지표에 절박한
아아 저 독올(禿兀)한 불모의 면상을 보라


<감상>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끝장을 봐야 성이 풀린다. 인간들은 오로지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그곳에 기념비를 세운다.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기는커녕 상승의 꿈만을 꾸고 추락하는 때를 생각지 않는다. 과거 잘 나가는 때를 생각하고 현실의 추락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는 절정을 향한 몸부림이 없다. 천 길 낭떠러지에 자신의 몸을 걸어 놓은 풍모라니! 수십 만년의 윤회를 거치면 저런 모습을 갖출 수 있는가. 고작 인간은 오백 년을 수도 정진하여 득도하지 않았는가. 오백 년은 고사하고 살아 있는 현세에도 수기(修己)하지 않고 신에게만 의지하지 않는가. 한 번쯤 저 우뚝하고 변하지 않는 단애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지긋이 늙어갈 수 없나.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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