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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이야기] 7. 대구 북구 '연암서당골' 마을
[우리 동네이야기] 7. 대구 북구 '연암서당골' 마을
  • 전재용 기자
  • 승인 2020년 10월 25일 18시 43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0월 26일 월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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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체험 다 갖췄다…대구 북구 새로운 여행명소 발돋움
연암마을 목공소에서 진행하는 ‘원데이클레스’ 모습.
대구 북구 연암공원로에 있는 연암산은 해발 134m의 낮은 산이다. 절벽 바위에 제비들이 집을 짓고 절벽 곳곳에 앉아 쉬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제비 바위같이 보여 연암봉 또는 연암산으로 불리게 됐다. 물과 경치가 좋은 연암산은 신천과 함께 대구 시민의 휴식처로도 이용하는 장소인데, ‘연암서당골’은 대구시청 별관이 있는 옛 경북도청 자리부터 연암산까지 이어지는 일대를 일컫는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높은 신분을 가진 달성 서씨들이 집성촌을 이뤘고, 체화당을 비롯해 강학소와 서당 등 연암산에서 신천으로 가는 길목에 글을 익힐 수 있는 곳이 많아 서당골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곳이다.

옛 마을의 모습과 유구한 역사를 보유한 연암서당골 마을이 최근 도시재생을 위한 대대적인 정비를 마치면서 북구의 새로운 여행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구암서원 전경
△유구한 역사 느낄 수 있는 ‘구암서원’.

연암서당골 마을의 시작점이자 종착지인 구암서원에서는 북구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경북도청 이전터부터 연암서당골 마을의 풍광을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로, 근대 건축물부터 연립주택 등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특히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초·중·고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인성교육과 각종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1788년(정조 2년) 왕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이후 선현을 배향하고 지방유생의 교육을 담당했던 역사의 맥을 잇는다.

구암서원은 1665년(현종 6년)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 서침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중구 연구산 기슭에 숭현사를 세워 봉향한 곳이다.

1718년(숙종 원년) 중구 동산동으로 옮기면서 사가 서거정을 추가로 배향했고, 1741년(영조 17년)에 약봉 서성 선생을, 1757년(영조 33년)에는 함재 서해 선생을 추가로 배향하기도 했다. 이어 지방 유생의 교육을 담당했으나 흥성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8년(고종 5년) 훼철됐다.

약 60년의 세월이 흘러 뜻을 모은 유림에 의해 복원됐으며 1995년 동산동 일대가 도시화하면서 현재 위치인 산격동 연암산으로 옮겨졌다.

구암서원 앞뜰에 서 있는 달성 서씨 ‘족회사적비’도 남다른 역사가 숨어 있다.

1833년 5월(순조 33년)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한 서희순은 선조의 세거지(世居地)에 대한 감회가 깊었다.

선조의 숨결이 서린 유적지가 있고, 일족 또한 많이 살고 있어 그들을 위해 달성(현 달성공원)에서 달성서씨 600여 명을 초청해 화수회를 열었다. 화수회가 끝나자 사적을 비에 새겨 구암서원 뜰에 세웠는데, 이 비에는 화수회와 시회에 참석했던 9명이 각자가 한 문장씩 지어 하나의 시를 지었다.

각자 지은 시구가 하나의 시로 이어지는 사례는 전국에서도 드문 일이어서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열린 대구꽃백화점 가드닝파티 케이터링에 연암마을 카페분과 회원들이 참여했다.
△교육·체험문화로 내일을 꿈꾸는 ‘서당골 사람들’.

1960년대 경북도청이 들어서고 3공단까지 개발되면서 연암서당골 마을은 북적였다. 대부분 공장지대인 침산동과 섬유공장 등이 있던 옥산동에 주거지를 마련하기 쉽지 않았던 탓에 산격동으로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사람이 모이면서 마을도 급격히 커졌으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분동(分洞)이 이뤄졌고, 교육을 마친 청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서울 등 외지로 떠나면서 연암서당골은 점차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연암공원이 있는 용지인 탓에 단독·연립주택만 들어설 수 있어 개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연암서당골 쌈지쉼터와 텃밭
연암서당골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서상우 이사장은 “동네에는 노인들이 많고, 즐길 수 있는 공간조차 없었다”며 “작은 식당 몇 군데가 있었는데, 경사가 가파르고 점점 낙후되니까 사람이 오지 않게 되더라”고 옛 기억을 꺼냈다.

하지만 최근 5년 사이 연암서당골이 한층 밝아졌다. 북구청에서 연암서당골을 대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다.
연암서당골 마을 목공소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서 이사장은 “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도 가꾸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목공소와 카페가 만들어졌다”며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만큼, 열정적이고 체험하는 아이들도 굉장히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암서당골에서 주민들이 직접 경영을 하고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게 초기이다 보니 홍보가 많이 부족하다”며 “요즘 추세에 맞춰 목공소에서 캠핑용품을 만드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는데, 주민들의 노력과 우리 마을만의 특색이 널리 알려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암서당골 여행사업에 포함된 복합문화공간 조감도
△북구청 ‘연암서당골’ 지원 방안 모색.

북구청은 올해 연말까지 연암서당골 여행사업과 관련된 시설물 조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연암서당골 여행사업은 지난 2015년부터 경북도청 이전에 따른 도심공동화 현상을 방지하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추진됐다. 총 67억8200만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는데, 낡은 마을 환경을 정비하면서 주민공동체를 구성해 주민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게 하려는 구청의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마을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진행한 결과, 벽화가 새겨진 ‘연암 길 갤러리’가 탄생했고, 연암마을 안길과 구암서원 진입로도 재정비됐다.
연암서당골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 지난 9월 8일 설립총회를 개최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연암마을 특성을 살리기 위한 ‘연암인문마당’과 ‘연암체험마당’이 조성된 데 이어 주민들의 활발한 교류를 목적으로 ‘연암교류센터 및 커뮤니티공간’과 ‘제비수다방’도 만들어졌다. 오는 12월 죽궁 제작실과 전시실, 교육장, 마을도서관 등이 포함된 복합문화공간 조성공사가 마무리되면 연암서당골 여행사업과 관련된 건축물은 모두 들어서게 된다.
연암서당골 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연암 카페 전경
북구청은 올해 연암서당골 여행사업과 관련된 물리적 사업은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내년부터는 주민들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지원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암서당골 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목공소.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만들기 체험을 진행한다.
연암 이역소
북구청 도시재생과 재생관리팀장은 “주민들이 올해부터 연암서당골 내에서 처음으로 경영을 맡았는데, 사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제대로 운영을 못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올해 사업 기간이 종료되면 내년부터는 주민이 직접 운영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앞서 만들어 놓은 시설물을 활용해 주민이 자생력을 키우고 지역에 활력을 넣을 수 있는 사업들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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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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