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연습 표지.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내면을 사색하게 하는 가을에 ‘관계의 내면과 무수한 찰나의 표정’을 밝히는 심아진 작가의 짧고 깊은 이야기 ‘무관심 연습’(나무옆의자)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은 날렵한 감각이 우아하게 착지한 스물여덟 편의 이야기로 199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모순적이고 불가해 한세상에서 부딪히고 견뎌내며 길을 찾는 인물들을 섬세하고 집요하게 그려온 작가 심아진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짧은 소설집이다.

등단 초기 10년을 해외 이주 등으로 독자 곁에서 떠나 있었던 작가는 그 시간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지난 10년간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고 사이사이 동료 작가들과 함께하는 작품집에도 신작을 발표하며 부지런히 독자를 만났다. ‘무관심 연습’은 세계의 이면과 인간 심리의 뒤편을 탐구해온 작가의 날렵한 감각이 짧은 형식과 우아하게 결합한 어쩌면 가장 심아진 다운 소설집이라 하겠다.

책에는 ‘모르는 만남’, ‘쉬운 어긋남’, ‘따가운 얽힘’, ‘희미한 열림’, ‘얕은 던져짐’ 등 다섯 개의 주제로 묶인 스물여덟 편의 소설이 실렸다.

만나고 어긋나고 얽히다 열리고 던져지는 삶의 사소하고 특별한 순간순간이 그만의 개성적인 언어로 펼칠 것임을 짐작게 하는 주제들이다.

그 예감대로 작가는 나와 우리, 우리와 세계가 맺는 관계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표정과 감정을 또렷하게 붙잡아낸다. 슬피 눈물 흘리는 인간(Homo Lacrimosus)과 웃는 인간(Homo Ridens) 사이를 가로지르는 서늘한 통찰은 좋은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각각의 작품 끝에 딸려 있는 ‘흐르는 말’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작가가 슬그머니 건네는 단상이자 작품에 대한 열쇳말이다.

작가 심아진은 짧은 분량 안에 삶의 속내를 날카롭게 잡아내는 이 장르의 고수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서사는 문학평론가 임정연의 표현대로 “기발하다가 아찔하다, 과감하다가 집요하다, 날카롭다가 서늘하다, 쓸쓸하다가 아득하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며 썼다. 그래서 나를 덜 보고 덜 찾고 덜 만지는 ‘무관심 연습’을 하며 우리를 위한 공간을 더 넓히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문학을 향한 일이기도 하다.

심아진 작가는 1999년 ‘21세기 문학’에 중편소설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가벼운 인사’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됐다. 소설집 ‘숨을 쉬다’, ‘그만, 뛰어내리다’, ‘여우’, 장편소설 ‘어쩌면, 진심입니다’가 있다. 곽성일기자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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