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이 많아져요 가을엔
옥상으로 올라가는 신발들이

옥상은 안 가본 데가 없어 늘 혼자지요
더듬대는 목소리로
주머니 늑대, 나그네 비둘기, 순정, 천사…
멸종된 이름들을 부르곤 하죠

괜찮아, 괜찮아,
가끔 어깨를 쓰다듬는 손길이 와 닿기도 하지만
그건 / 어디선가 쫓겨 온 가랑잎들
막힌 배수구에 고이는 빗물들
한바탕 내전을 치른 빈 술병들

이제 누구든 힘센 자들 앞에서는 모자를 벗지 않으려 해요
부러진 나뭇가지, 젖은 재, 어린 물결들에겐 존댓말을 하고요

옥상은 비어있는 거 같아도
캄캄한 거 같아도
별자리들이 참 많아요

제 속을 응시하는 눈길과
세상을, 그 너머를 바라보는 눈길이 만나 생겨나는


<감상> 가을 옥상은 먼저 어둠을 불러 그윽하게 하니 번식을 많이 하죠. 특히 가난하고 외로운 이는 옥상과 친해질 수밖에 없죠. 옥상이 멸종된 이름들을 대신하여 힘껏 불러주니까요. 돈을 두둑이 넣을 주머니가 없고, 이집 저집 세 들어 사는 나그네 신세이고, 이 세상에 나를 지켜주는 천사와 신은 없을 테니까요.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들은 다 사소한 자연물들 뿐이죠. 굳센 의지를 가질수록,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록 삶은 순탄치 않지요. 옥상은 비어 있고 어둠과 결부되어 있기에 별들이 쏟아지고 유난히 밝지요. 서로 뚫어지게 쳐다보면 저 별이 되어 떠날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많이 가진 갑부는 죽어서 별이 되었을까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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