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김제정 작

도어록 번호를 눌러 잠금장치를 해제한 후 문을 열어젖히자 겨울들판 같은 황량한 거실이 민낯을 드러낸다. 그녀가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고인 공기들이 와락 달려들어 코 점막에 들러붙는다. 시큼한 곰팡내가 코를 찌른다. 그녀는 환기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세탁실로 종종걸음 친다. 세탁조 뚜껑을 열고는 보스턴백에서 꺼낸 비닐봉지를 쏟아 붓는다. 쉰내가 뭉근하게 올라온다. 그녀가 콧등을 찡그리며 액체세제를 들이붓고 세탁기의 전원버튼을 누른다. 세탁조에 물이 차오르자 세탁기 뚜껑을 닫고 거실로 나온다.

사흘 전, 그녀는 시모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급하게 다녀왔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시모는 혈액투석을 받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합병증이 심해졌다. 담당의는 멀지 않아 시력을 잃을 것이라고도 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시모와 얽히고 싶지 않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집을 나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시모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그녀뿐인데도.

그녀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휴식이 필요했다.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뉘이자 수십 장의 창문을 몽둥이로 깨부수고 온 듯 팔다리가 무지근했다. 어깨에서 시작된 통증은 척추를 따라 신경망의 강도를 높여가고 발끝의 통증 또한 종아리 근육을 타고 허벅지를 지나 골반까지 치밀었다. 요양병원에서 한 일이라곤 시모를 지켜보는 것뿐인데도 긴장이 풀어지자 그간의 스트레스가 몰려오고 있었다. 백색 형광등 불빛을 올려다보자 수박씨만한 검은 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엿가락처럼 길고 삐죽이 마른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점이 그녀에게 뚝 떨어지면서 뺨이 간질거렸다. 놀란 그녀가 얼굴을 툭 치자 점은 소파 저편으로 날아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탐색전이라도 벌이자는 건가. 놈은 납작한 몸을 바닥에 붙인 채 미동도 없다. 그녀가 죽었나 싶어 발로 툭, 치자 그제야 다리를 꾸물거렸다. 그녀에게 벌레란 보이는 족족 없애야 하는 끔찍한 해충일 뿐이었다.

어릴 적 그녀가 살던 곳에도 벌레는 득시글거렸다. 기후가 워낙 덥고 습해서 해충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고, 특히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개미들에겐 그녀도 자주 살갗을 내주었다. 과자 부스러기가 방바닥에 떨어진 날은 밤새 긁느라 잠을 설쳤다. 벌게지게 물린 살갗을 손톱으로 벅벅 긁다보면 딱지가 앉았고, 근지럽다고 또 긁으면 딱지가 벗겨졌다. 그러한 과정을 거듭 거치는 동안 몸에는 흉터가 졌다. 그녀의 다리에도 희끗희끗한 흉터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바닥에 굴러다니던 전화번호부를 집어 든다. 기회를 봐 내리찍을 생각이지만 놈도 살고 싶은지 유선형의 몸을 펼쳐서는 재바르게 사라진다. 놈에게 균열된 벽체는 견고한 요새요, 은신처로는 탁월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복도를 타고 휘파람 소리가 가까워진다. 갑자기 휘파람소리가 끊기자 그녀의 고개가 복도 쪽으로 돌아간다. 열린 문 앞에서 검은 사내가 실내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도 바퀴처럼 탐색전이라도 벌일 심산인지 눈에 호기심이 질하다. 사내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흰자위로 푸르죽죽한 분노가 어른거린다. 둘의 신경전이 팽팽해지는가 싶더니 사내가 뒷걸음을 친다. 그때를 놓칠세라 그녀는 얇고 긴 팔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이윽고 휘파람 소리가 멀어져간다. 비로소 그녀는 소파등받이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어 안도한다. 문 안쪽의 모든 공간은 봉쇄되어 문이 열리기 전까진 안전할 것이다. 공간 안에는 그녀의 친근한 소유물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안정감과 위안을 줄 것이다. 거실에 놓인 가구라곤 삼인용 레자 소파와 4인용 원목 식탁이 전부다. 그래서인지 원래 평수인 열여덟 평보다는 넓어 보인다. 식탁은 그녀가 중고가게에서 구입한 것이다. 소파 바닥에는 다홍색의 면 패드와 푸른 무명천의 이불이 깔려있다. 하나뿐인 방에는 바닥과 천장이 맞닿은 2단 옷걸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거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에게 방은 그저 옷을 보관하는 드레스 룸에 불과하다.



휘파람 사내는 101호에 살고 있는 스리랑카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만 보면 휘파람을 불었고, 그때마다 바퀴가 출몰했다. 천장에서 바퀴가 떨어진 것도 분명 사내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그녀는 단정했다.

사내와의 일면식은 그녀가 이사 들어오기도 전에 이뤄졌다. 의뢰한 부동산에서 12층에 임대물건이 나왔다고 연락이 온 날이었다. 그때 그녀는 1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12층에서 머물던 엘리베이터가 하강해 문이 열리고 검은 사내 열 댓 명이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왔을 때 휘파람 사내도 그 무리들과 함께 있었다. 그녀의 뒤통수에서 느닷없이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얼른 엘리베이터 속으로 잽싸게 몸을 밀어 넣어 닫힘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문은 닫혔다 열렸다를 반복하며 그녀의 속만 태웠고, 그러느라 그녀는 원치 않은 휘파람 소리를 더 들어야만 했으며 사내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몹시도 피로감을 느꼈다.

12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들렸지만 그녀는 내리지 않았다. 검은 사내들이 12층에 포진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집을 보기도 전에 포기부터 한 거였다. 순전히 기우였는데도 막연히 두려웠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한 후 그녀는 부동산에 전화를 해 1층으로 알아봐달라고 했다. 떨떠름한 반응을 걱정하고 있던 차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의외로 밝았다. 부동산 소장은 번복된 결정을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지금이라도 102호에 당장 입주할 수 있다며, 더군다나 주인이 타지에 살고 있어 간섭받을 일이 없다는 걸 강조했다.

월세도 12층에 비해 5만원이나 저렴했으니 재고 따질 것도 없었다. 볕이 잘 드는지, 보일러는 이상이 없는지, 외풍은 얼마나 센지, 관리비는 평수에 따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의 조건을 따질 필요도 없이 그녀의 생각은 102호로 기울어졌다. 그녀가 실내를 둘러보고 싶다고 했을 때 소장은 급한 용무가 있어 그러니 두 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한 시간만 더 기다려달라는 문자만 도착했다. 당장 입주가 가능하다는 그의 말을 믿은 것은 중대한 착오였다. 이사당일 그녀는 뜨악한 현실 앞에 당혹했다. 소장은 월세가 5만원이나 싼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꿈의 궁전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찜찜했다. 더군다나 들판 가운데에 덩그러니 솟아오른 아파트는 주변에 바람막이가 되어줄 숲이나 건물이라곤 없어 여름엔 덥고 겨울엔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게 분명했다.



어느새 세탁기는 헹굼 코스로 전환되었다. 탈수와 헹굼의 모드가 번갈아 바뀔 때마다 뭉실뭉실한 거품이 배수구로 쏟아졌다. 또다시 탈수 모드에 이르자 세탁물이 한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세탁기는 우당탕탕 굉음을 내질렀다. 그녀가 달려가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회전을 하던 세탁조가 서서히 멈췄다. 이윽고 세탁기가 잠잠해지자 그녀는 뭉친 빨래들을 꺼내어 탈탈 털어 다시 세탁조에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그런 다음 동작 버튼을 눌러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동공에 압력이 차오르면서 초점이 흐릿해졌다. 거실의 사물들이 각각의 독립된 형태로 툭툭 불거져 나오더니 세탁조의 회전판처럼 허공을 빙빙 돌아다녔다. 마치 세탁물이 뒤엉킨 것처럼 사물들은 불가역적인 형태로 그 어떤 규칙도 없이, 때론 오목거울에 반사된 듯 확대되어 보이다가도, 무수히 가는 선으로 쪼개져 보이기도 했다. 시선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자 그녀는 멀미를 하듯 현기증이 나면서 속도 메슥거렸다.

불현듯 발목 부위에 냉기가 느껴지면서 축축했다. 둘러보니 세탁실 배수구에서 넘친 비눗물이 거실에도 흥건했다. 세탁기는 마지막 헹굼 코스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전원 버튼을 껐다. 그런데도 비눗물은 분수처럼 끝도 없이 샘솟았다. 참다못해 그녀가 관리 사무실로 내달렸다. 출입문에 다다르자 노크도 생략한 채 문고리부터 잡아당겼다. 마침 관리소장의 아가리로 벌건 무 쪼가리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배수구가 막혔어요! 거실에도 물이 차올라요!

그녀가 다급하게 소리쳐보지만 소장은 무를 오도독 씹어내며 입술을 오물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퇴근이 코앞인 시각에 도시락이라니! 모든 정황이 수상쩍은데도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방으로 물이 넘어간다고요!

그녀가 채근해도 소장은 숟가락질만 반복했고 기어이 한 톨 남은 밥알조차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서야 느린 동작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김 사장. 102호에 또 막혔나봐.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다행히 안방으로 물이 넘치진 않았다. 그런데 바닥에 깔려있던 이불 위로 수박씨만한 점들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게 아닌가. 바퀴가 이불을 구명보트 삼은 거였다. 그녀는 미물의 검질긴 생명력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신도 저렇듯 목숨을 구걸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그랬다면 이 먼 곳까지 도망쳐올 필요도 없었을 거라는 회한이 배수구의 물처럼 그녀의 가슴을 흥건히 적셔댔다.

스피커에서 삼십분 동안은 물을 쓰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집 앞 복도엔 방송을 듣고 몰려나온 주민들과 관리소 직원들로 시끄러웠다. 직원이라곤 소장, 미화원 아주머니, 전기기사, 그리고 경비원 영감이 전부지만 소장은 약속이 있다며 꽁무니를 내뺐고, 경비원 영감도 택배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터다. 그러니 남은 직원이라곤 전기 기사와 미화원 아주머니 둘뿐이었다. 전기기사가 팔을 걷어 부치고 젖은 이불과 가재도구를 복도 밖으로 끌어냈다. 그런 후 미화원 아주머니를 도와 거실에 고인 물을 바가지로 퍼냈다.



소장이 설비 사장을 대동하고 나타난 건 여섯시 반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설비사장은 오물을 몰고 다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의 몸엔 붙은 악취가 진동을 했다. 그가 작업하는 동안 손으로 코를 감싸 쥐지 않고서는 숨도 쉴 수가 없다. 그는 차에서 가져온 장비를 욕실바닥에 늘어놓고는 콘셉트를 찾아 코드를 꽂았다. 그러자 스테인리스 재질의 호스가 탈수통처럼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며 배수구 속을 파고들었다. 잠시 후 호스에 딸려 나온 머리카락이 욕실 바닥으로 흩어진다. 빳빳하고 꼬불거리는 것이 그녀의 얇고 힘없는 모발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하긴 물난리가 처음도 아니다. 그녀의 레이더망에 두 사람의 수상한 행동이 포착 된 지는 두어 달도 더 된 일이다. 그날도 그녀의 집 배수구가 역류해 소장에게 연락했으나 불콰한 낯빛으로 사장을 대동하고 나타난 시각은 신고 후 두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날도 역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원인이었다. 그날도 일이 끝나자 설비사장은 한 푼의 에누리도 없이 일십만 원이 적힌 영수증을 그녀의 코앞에 디밀었다. 그녀는 숫제 날강도를 만난 기분이었다. 소장에게 따질 요량에 관리실로 갔을 때 빠끔히 열린 문틈으로 누런 지폐 두 장을 소장에게 건네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사장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말하자면 소장은 눈 먼 돈을 잘 주워 먹었다. 그러니까 노후한 아파트는 리모델링 공사가 잦은 법이었고, 그때마다 소장은 커미션을 챙기곤 했다. 그녀는 셈이 빨랐다. 모르긴 해도 소장은 십만 원을 청구해 지출한 후 장부에는 수선유지비 명목으로 기록해 놓을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더니 숫제 그 짝이다. 그날 밤 사장은 오만 원을 벌었을 테지만 소장은 십오만 원을 챙긴 격이다. 그 즈음 관리 사무소의 회계업무는 소장이 관리하고 있었고, 장부 정리 또한 그가 맡아서 정리하고 있었다. 아파트관리비 또한 그의 머리와 손에서 산정되고 있는 형편이라 어디에서든 구멍은 생겨나는 법이고 소장은 기회를 봐 자신의 실속을 챙겼다. 그러고도 말끝마다 자신이 수고하여 사무보조원한 명의 인건비를 절약하게 되었다고 생색을 냈다.

설비사장이 장비를 거둔 후 조악한 글씨로 날려 쓴 영수증을 그녀에게 들이민다. 보나마나 십만 원이 청구되어 있을 터, 그녀는 왜 매번 자신이 그 비용을 감당해야하는지 억울했다.

설비사장은 스스로를 공무원이라고 착각하는지 퇴근시간을 6시로 정해놓고는 그 이후의 모든 작업에 관해서는 심야할증료를 적용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 같지만 그는 당당하게 청구서를 들이밀며 초과수당을 챙겼다. 한두 번도 아니고 더는 참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벼르고 있었다.

여섯 시에서 고작 사십분이 지났는데 두 배를 달라니 너무 하잖아요! 지난달에도 십만 원이나 받아 가고는. 게다가 다섯 시에 신고했는데 사장님이 늦게 온 거잖아요.

그녀가 가시 돋친 말로 쏘아붙이는데도 관리소장의 입은 대합처럼 꾹 닫혀 있다. 더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설비사장은 도리어 배짱이다.

그렇게 억울하면 다른 업잘 부르던가. 나도 퇴근 후에 하수구 냄새 맡고 싶지 않으니

세탁기 전원을 껐는데도 역류하는 건 제 탓이 아니죠.

아니 배수구 막힌 집에서 책임져야죠.

머리카락 좀 보세요. 이렇게 짧은데 설마 내 거라고 생각하시진 않죠?

거참, 고집 그만 피우고 돈이나 주세요. 그럼 난 이만.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던 관리소장이 겨우 한다는 소리가 사장 편이나 들고는. 그러고는 자신은 이 일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줄행랑을 치네.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도무지 양심이라곤 없지 않은가. 어차피 사장과 소장이 한편 먹은 것은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포기가 되지 않는 건 그녀 스스로의 피해의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직접 보이는 게 아니니 확증할 방법도 애매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그런 기운을 감지했다. 더군다나 선샤인타운 250세대 중 3분의 2 이상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로 사용되어지고 있었으므로 보이지 않은 차별은 분명 존재했다.



아파트가 완공되어 입주가 시작되고도 십년 가량은 빈집이 넘쳐났다. 유령 아파트로 불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몇 해 전 아파트 주변에 산업공단이 조성되어 공장들이 속속 들어오면서 빈집도 사라졌다.

바깥으로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그녀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끼고 어안렌즈로 복도의 동태를 살핀 후에야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다행히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다. 오늘 외출은 방해받을 일이 없을성싶어 안도감이 올라오지만 복도를 벗어나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며 등허리에 땀이 솟는다. 땅거미가 지면 아파트 입구는 검은 사내들로 장사진을 친다. 흡사 황량한 벌판에 모여 앉은 까마귀 떼 같다. 그곳은 광장인데다 마트가 인접해 있어 담소를 나누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그들은 제 집 드나들 듯 마트를 오가며 음료와 주전부리를 사다 날랐다. 또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모국어로 떠들다가도 누군가 선창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떼창으로 번졌다.

그녀의 뒤통수에서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 궁금할 것도 없었다. 처음엔 그 소리가 수컷의 교성처럼 음침하다고 생각했으나 언젠가부터 위험을 경고하는 인디언의 북소리처럼 불길했다. 어떤 해를 가하거나 위협의 낌새가 전혀 없는데도 그녀는 막연히 두려웠다. 숨을 곳이라곤 마트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수중에는 두부 한모 살 돈조차 지닌 게 없었다. 뒤통수가 따갑다고 느껴지자 그녀는 마트 안으로 달려들었다. 마트여자는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차 사내들도 함부로 하지는 못할 테니까.

그녀는 식료품 매대를 돌며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흘깃하는 마트여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고개를 숙이고서 물건을 고르는 척 했다. 식료품 코너에서 우측으로 모서리를 돌면 가공식품코너가 나온다. 벽에는 음료를 진열해 놓은 냉장고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그 마지막 냉장고 바로 가까이 출입구가 있다. 앙칼진 고음이 공기를 쩍 가른 건 어서 빠져나가야한다는 강박증이 몰려오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카운터에 앉아있던 마트여자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입구를 막지 말랬잖아! 여기가 너구리굴이야 뭐야? 담배는 저쪽 가서 피우라고 골백번도 더 말했을 텐데 귓구녕은 어디다 두고! 말을 더럽게도 안 들어 처먹지.

여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새떼 후려치듯 팔을 내저었다. 사내들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정적이 흐르자 휘파람 사내도 입을 다물었다. 냉랭한 공기가 지속되었고,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꼬리를 먼저 내린 이는 마트 여자였다. 그녀는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고자 매장 뒤로 물러나 과자박스를 뜯어 매대에 진열하는 척했다. 과자봉지에서 부스럭부스럭 나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때다 싶어 얼른 마트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서두를수록 타인의 시선을 더 끌게 된다는 걸 그녀는 감지하지 못했다. 어느새 저녁 공기가 쌀쌀해져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마트 입구에서 물러난 사내들은 아파트 쪽으로 좀 더 물러나 담배를 태우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자면 그들의 시선을 피할 순 없었다.

그녀가 머뭇거리는 사이 휘파람 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마트에 도로 들어갈 수도 없고 난감하던 중에 2층 점포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띄었다. 지나다니면서 창문에‘인력 상시모집 중’이라고 썬팅 문구를 눈여겨보고 있던 참이라 이참에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싶어 그녀는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갔다. 철문에‘은하수 인력개발사무소’라는 아크릴 현판이 부착된 사무실을 노크했다. 안에서 헛기침 소리가 나는 것 같았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외모는 늙수그레한데 머리카락은 유난히 검은 남자가 얼굴을 내밀며 대뜸 어서 오쇼, 하고 그녀를 맞았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가 더러 많은 듯 놀라지도 않은 반응에 그녀는 되레 멋쩍었다. 그가 소파로 안내하며 그녀의 몸을 힐끔거렸다. 잠시 후 형광등 불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은 잔주름이 자글자글했고 예순 중반은 넘어보였다.

그녀가 소파에 앉아있으려니 유리탁자 위에 놓인 재떨이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라 숨쉬기도 힘들었다. 방금 전까지도 담배를 태운 모양이었다. 모르긴 해도 노크 소리에 급히 끈다는 게 옆 꽁초에 불이 옮겨 붙은 듯했다. 그녀가 기침을 참지 못해 캑캑댔다. 그러자 남자가 무안한 얼굴로 정수기로 걸어가 종이컵에 냉수를 받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가 종이컵에 입을 대려는데 니코틴 냄새가 역하게 치받았다. 그녀는 컵을 내려다보며 머뭇하다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었던지 억지로 들이켰다. 그녀가 탁자에 컵을 내려놓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혹 일거리가 있을까요.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너무 약해 보이는데 센 일은 힘들겠네. 특별한 기술이라든가 자격증 같은 건 있소?

예전에 의류공장에서 미싱을 했어요.

요즘 미싱사는 구하지도 않아. 죄다 중국이나 베트남 공장에서 만들지. 마침 판넬 공장에 주방보조 자리가 있긴 한데…… 조리사 자격증은 있소?

주방보조도 자격증이 필요하나요?

있으면 유리하지. 실력을 판단할 근거잖소. 주방경력은 얼마나?

살림만 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며 말끝을 흐렸다. 남자가 한숨을 쉬더니 이어 말했다.

뭐 밑져야 본전이니 공장에 찾아가보던가. 이력서는 챙겨가시오.



그날 밤 그녀가 일찌감치 TV를 끄고 소파에 누워 있는데 복도 끝에서 차르르 차르르, 하며 야릇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천 마리의 메뚜기 떼가 날개를 비비며 일제히 날아오르는 듯한 오싹한 기분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평소대로라면 9시 뉴스가 시작될 시각이었다. 초침 소리가 거실의 적막함을 날카롭게 저미고 있어 쉬이 잠들 것 같지도 않아 조심스럽게 일어나 세탁실로 달려가 복도창을 열어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검은 사내들이 101호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 중에는 낯이 익은 사내들도 더러 보였다.

이윽고 101호의 출입문이 닫히고, 몇 초의 정적이 흐른 후 느닷없이 북소리가 들렸다. 느리게 시작하던 리듬이 서서히 빨라져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면서 미묘하게 기분을 들썩였다. 다시 고요가 찾아오는가 싶더니 그것도 잠시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아카펠라 선율이 그녀의 귓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고저와 운율을 갖춘 곡조였지만 노랫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심란했다. 그녀는 바닥에 던져둔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전원을 켜고 볼륨을 최대치로 높였다. 그녀에게 TV는 시청의 목적이 아닌 오디오로서의 기능이 중요했다. 볼륨을 높이면 높일수록 외부와 차단된다는 안심도 커졌다.

벽체는 있으나마나한 허상이었다. 여과되지 않은 소리가 벽을 타고 시도 때도 없이 관류했으며 사생활에 대한 예의라곤 없는 공간에서 소음은 먼지처럼 와글거렸다. 게다가 본능은 여과 없이 분출되어 한밤에 정적을 뚫고 울리는 자지러진 교성과 변기 물 내리는 소리 따윈 민망함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옆집인 101호에는 사내 넷이 산다고 경비원이 귀띔해주었지만 종종 드나드는 여자들의 수를 합치면 예닐곱은 거주하는 듯하다. 물론 103호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만만치는 않다. 회사 사택으로 임대한 집은 수시로 드나드는 사내들의 얼굴이 바뀌어 그 수를 가늠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필리핀 사내 다섯이 살고 있을 거라는 경비원의 말은 말짱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소음을 견디다 못해 불쑥불쑥 치밀어오는 신경질과 불면 때문에 처방약을 먹지 않고는 편히 잘 수도 없었다. 의사는 갱년기가 일찍 온 거라고 진단했지만 그녀는 그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고작 마흔인데 갱년기로 치부해버린 그 늙은 의사가 성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싱크대로 가서 서랍을 열고는 신경안정제가 든 약병을 꺼내들었다. 알약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은 후 식탁 위에 올려있던 생수를 들이켰다. 물맛이 미지근했다. 문득 슬픔이 꿀꺽하며 목젖에 고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하윤과의 결혼생활도 생수처럼 미지근하기만 했다. 부부라곤 하나 서로 얼굴 붉혀 언성을 높이거나 마주앉아 얘기한 적도 없었다. 알콩달콩 깨소금 볶고 산다는 신혼 때조차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하윤의 성품은 진중하기보단 무력에 가까웠다. 한쪽이 무디면 다른 쪽이라도 발발거려야 균형이 맞는 건데 그녀는 좀체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집안엔 산중의 묘지처럼 늘 적막이 드리워져 시모의 호통만이 적막을 깨우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하윤을 떠나보낸 후 그녀는 수없이 후회했다. 여우처럼 교묘하게 홀리기라도 했다면, 발톱을 세워 앙앙거려 불만을 털어놓았다면 마음을 돌렸을까하고. 그랬다면 그가 그런 모진 선택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그녀는 거친 세상에 살아남자면 좀 더 모질어져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안색이 행려병자처럼 시들시들했다. 약 기운인지 눈꺼풀엔 끈끈이주걱 같은 잠이 칭칭 달라붙는데도 신경줄은 촉수를 뻗어 무의식의 세계에 안착하려는 그녀를 기어이 깨우고 만다. 어디선가 항아리 깨지는 듯한 투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나마 애라도 없으니 다행이지. 반쪽이 어떻게 온 쪽을 낳는다고. 피만 더럽히지.

그때 악, 하고 비명이 솟구치며 한 가닥 후회의 빛이 그녀의 신경을 옥죄인다. 어둡고 습한 과거의 잔재가 모래바람처럼 서걱거리며 그녀를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 넣는다. 그녀는 스물일곱 봄까지 고향에서‘호아’로 불리며 엄마와 살았다. 호아는 장미란 뜻으로 한국에 와서는 아예 한국식으로 개명했다. 장미는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울 때 강사가 붙여준 이름이었고, 그녀도 호아보다는 장미로 불리는 것이 좋았다. 어정쩡한 이방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였다.

호치민에 살 때 그녀는 라이한꿕이라는 별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거기서는 반쪽만 한국부모를 둔 아이들을 그렇게 불렀고 차별과 멸시가 뒤따랐다. 한국에 와서도 그녀는 그러한 자괴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시모가 늘 일깨워주곤 했으므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인 사업가였는데,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 얼굴을 본적도 없었다. 이유 없이 멸시와 놀림을 당하게 되면서 그녀는 친부에 대한 원망도 커졌다. 굳이 친부의 나라를 택한 건 막연한 동경도, 복수도 아니었다. 친부를 찾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자신의 아이가 라이한꿕이 아닌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받으며 자라나려면 한국이 더 안전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윤과는 국제결혼업체에서 주선한 맞선자리에서 만났다. 첫인상에 호감이 가진 않았다. 자외선에 그을린 피부는 거칠어보였고, 얼굴에도 잡티투성이었다. 게다가 허리도 구부정해 늙수그레한 영감이 재혼상대를 구하러 나왔나 싶었다. 하지만 숫기 없어 좀체 입을 떼지 않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그녀는 저토록 과묵한 성품이라면 가족의 신의를 저버리는 짓 따윈 절대 하지 않으리라는, 적어도 자신의 친부처럼 무책임하게 자식을 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현실과 이상은 흔히 그렇듯 괴리가 존재하는 법이다. 바램과는 달리 그녀는 가족들과 잘 섞이지 못했다. 가족이라야 달랑 시모와 남편뿐인데도 그랬다. 모자가 머리를 맞대고 아침밥상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 그녀는 벽장 속으로 들어가 웅크린 채 가만히 기다렸다. 모자의 식사가 끝나고 하윤의 출근길에 시모가 따라 나가면 그때부터 그녀는 벽장에서 나와 어질러진 밥상머리에 앉아 잔반을 허겁지겁 입으로 쓸어 넣기 바빴다. 시모는 경로당에 가면 저녁 먹을 때까진 돌아오지 않는데도 뭣에 쫓기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청소기로 집안 구석구석을 밀었다.

일을 마치고 벽장으로 돌아갔을 때야 그녀는 비로소 안식했다. 벽장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온했으며 덥고 눅눅한 공기는 고향의 기온이 느껴졌다. 물론 이따금은 정수리에 햇살을 맞으며 여유로운 산책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 기척에도 놀래하며 바퀴처럼 벽장 속을 파고들었고, 사람들 눈에 띄는 걸 두려워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마도 하윤이 경제력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이후였을 것이다. 하윤은 정부 융자로 지은 돈사가 연이어 불어 닥친 태풍에 폭삭 무너지고 그나마 살아남은 가축들에게 전염병이 돌면서 축사가 문을 닫자 그의 입도 덩달아 닫혀졌다. 그 무렵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궁여지책으로 취직한 판넬 회사는 반년 만에 경매에 붙여졌다. 나라 안팎으로 경기는 최악이었고, 수출 길도 막혀 버린 탓이었다.



며칠 후 그녀는 은하수 개발에서 알려준 판넬 공장으로 찾아갔다. 공장 입구에는 대형트레일러가 가로막아 그녀는 선뜻 들어가지 못한 채 입구에서 서성였다. 지게차가 공장과 트레일러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판넬을 날라 트레일러 위에 쌓아두면 키 작은 인부가 받아서 그것을 차곡차곡 정리해 밧줄로 묶었다. 목덜미에 드러난 인부의 피부색이 유난히 검었다. 그녀는 판넬에 부딪힐까 싶어 멀찍이 물러나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오자 익숙한 냄새가 그녀의 콧방울로 스쳤다. 하윤에게서 맡던 파스냄새였다. 문득 하윤도 저렇게 힘들게 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의 코끝이 시큰했다.

인부가 밧줄을 일일이 잡아당겨 묶인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트레일러 기사는 담배를 꼬나문 채 미간을 찡그렸다. 그때 조금 떨어진 작업장에서 머리 희끗한 남자가 나오면서 자재 차량이 곧 들어올 거라며 차를 빼라고 재촉했다. 명령하는 투로 짐작해 공장장인 모양이었다. 그 소리에 기분이 상했는지 트레일러기사가 입에 문 꽁초를 바닥에 내던지며 인부를 다그쳤다.

밧줄 느슨해진 거 안보여! 한쪽으로 쏠렸잖아. 도로에서 와르르 쏟아지기라도 하면 니가 책임질 거야?

죄, 송, 합, 니, 다.

죄송하면 일을 제대로 해야지. 비실대지 말고.

말이 끝난 트레일러 기사가 인부의 어깨를 툭 치자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트레일러 아래로 추락했다. 비명소리를 들었는데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공장장은 작업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몸이 그쪽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의 체구가 휘파람 사내를 닮았다고는 생각 했지만 막상 확인하자 좀 당황한 눈치였다. 바닥으로 나동그래진 사내의 뺨에 모래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새 트레일러 기사는 운전석에 올라타 새 담배에 라이터 불을 댕기는 중이었다.

그녀가 휘파람 사내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모래를 털라고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손수건으로 직접 털어주고도 싶었지만 갑작스런 호의가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함으로 그녀는 참았다. 사내는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은 표정인데도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전처럼 기분 나쁜 소리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교감을 나눠온 사이처럼 친밀감이 솟아나는, 그래서 그를 향한 선입견과 악의적인 감정들이 걷히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쥔 이력서를 고깃고깃 접어 가방에 도로 넣었다. 포기할 이유는 명백했다. 사내가 받은 불이익이 곧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다. 열악한 작업환경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못한다는 것도, 주방보조로 채용되는 순간 모멸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것도 간파했다. 그녀 또한 사내와 다름없는 어정쩡한 부류이었기에.

그녀가 사내가 다시 트레일러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공장을 빠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녀는 휘파람을 연습했다. 소리가 시원스럽게 나진 않았지만 조금씩 선명해지고는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센서 등이 켜지면서 어둠에 잠긴 사물들이 홀연히 떠올랐다. 벽체를 더듬어 전기 스위치를 켜자 시간의 숙변일지도 모를 어둠이 빛에 쓸려나간 그때 그녀의 비명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

바퀴의 역습이었다.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 새끼들까지 죄다 몰고 와서는 거실과 식탁을 점령했다. 버석한 식빵 봉지 안에도 수십 마리나 우글거렸다. 그녀는 살충제를 들고 손에 잡히는 대로 분사했다.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그녀도 잡을 판이었다. 약에 취한 바퀴들이 사지를 떨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독한 약에도 목숨을 건져 도망가는 놈들도 있었다. 바퀴는 단 한 번의 교미로도 평생 알을 낳는데 암컷이 죽어도 그 몸에서 알집만 떨어져 나오면 수백, 수천마리로 부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호모사피엔스 이전에 출몰해 빙하기마저 견디고 3억 5천만 년을 거슬러 화석으로 남은 모진 생명력이다.

사태가 얼추 진정되자 그녀는 관리사무소로 달렸다. 출입문은 잠겨 있고, 문 앞에는‘소방안전교육 참석 중’이라는 메모지만 펄럭였다. 하는 수 없이 그녀가 경비실로 뛰어갔다.

경비실 앞에는 누렇거나 하얗고, 또는 검은 점박이 털을 가진 고양이들이 보초병처럼 지키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이곳에 오기도 전부터 경비원 영감이 키우던 것인데 그 수가 수십 마리에 이르렀다. 택배물건을 찾으러 갈 때마다 고양이들이 꼬리를 치켜세우고 주인행세를 한다며 주민들의 원성이 잦았지만 경비원 영감은 무슨 배짱인지 들은 척도 안했다. 오히려 동물 애호가라도 되는 양 주민더러 배려가 없다며 큰소리를 쳐댔다. 영감의 무릎에는 누런 줄무늬 암고양이가 배를 훌러덩 까고 드러누워 있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그것도 암놈이라고 텃세를 하는지 이빨을 드러내 하악질을 해댔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게 사자흉내라니? 영감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등을 쓸어내리자 쫑긋 세운 꼬리를 내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경계의 눈빛을 풀지는 않았다.

또 배수관이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영감이 묻는다.

바퀴가 수백 마리는 될 거에요. 살충제도 소용없어요.

난 또! 바퀴 없는 집이 어딨다고! 약 뿌려봤자 죽지도 않아. 옆집에서 쉴 새 없이 알을 까는데 뭔 수로 막아. 질긴 게 사람 목숨이라지만 그보다 더 질긴 게 바퀴일 거요. 속 끓이지 말고 바퀴랑 동무 하슈. 오죽하면 돈 벌레라 하잖소. 아줌씨 부자 되겠수다!

영감이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이죽거린다. 그녀는 속으로 무식한 영감탱이, 돈벌레도 구분 못하나싶어 샐쭉하게 쏘아붙인다.

돈벌레는 바퀴가 아니고 그……그리마라구요. 지네같이 생겨서 발 많고 징그럽게 생긴 벌레요.

영감은 시시콜콜 따지는 게 성가시다는 듯 경비실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리마가 돈벌레라는 건 시모에게 들은 거였다. 어릴 때 물린 기억 때문에 무서워하자 쓸데없이 호들갑을 떤다고 야단맞아가며 들어서인지 그 이름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바퀴의 역습 후 평온한 날들이 이어졌다. 새벽마다 모닝콜처럼 울리던 휘파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퀴가 나오지 않은 건 아파트 전체에 실시한 방역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휘파람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녀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러한 상태로 몇 주가 흘렀다.

아침 댓바람부터 둔중한 파열음이 그녀의 단잠을 깨웠다. 복도엔 거무튀튀한 작업복을 걸친 휘파람 사내가 푸른색의 이삿짐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녀는 궁금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진 않았다. 저 푸른 상자에 바퀴들이 가득 들어있진 않을까? 하고 상상하다가 그녀는 문득 한국어 강습 때 배운‘피리 부는 사내’이야기를 떠올렸다. 쥐들이 피리 소리를 따라 강으로 몰려가듯 바퀴들도 사내의 휘파람 소리를 따라 멀리 떠나갔으면 하고 생각했다.

드디어 복도가 잠잠해졌다. 그녀가 달려 나갔을 땐 사내를 태운 트럭이 아파트 주차장을 막 빠져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사내가 룸미러로 그녀를 발견하고는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입술을 뾰족하게 오므렸다. 휘파람 소리가 귀에서 멀어져 갈 즈음 그녀의 휴대폰이 살충제 맞은 바퀴처럼 부르르 떨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걸걸한 음색이 귓가에 쩌렁쩌렁했다.

은하수 개발이오. 일자리가 났는데 내일 오전 중에 들릴 수 있겠소?

전화를 끊었을 땐 휘파람 사내를 실은 트럭도 사라졌다. 그제야 그녀는 울컥하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한발 한발 땔 때마다 정수리 위로 오수의 햇살이 친밀한 감촉으로 내리 쬐였으며 외벽에 새겨진 선샤인타운 다섯 글자가 그녀의 눈 속으로 환하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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