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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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1일, 포항 스틸야드에 관중 1만6000명이 운집한 가운데 K리그 10라운드 포항과 전북 경기의 휘슬이 울렸다. 이적한 뒤 두 번째 시즌을 맞은 이동국은 이날 전반 37분 포항의 골문을 갈랐다. 양 팀이 공격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접전이 전개되던 순간 균형을 깬 골이었다. 경기장을 찾은 포항 관중들은 ‘포항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아직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이동국의 활약에 박수를 쳐 줄 수도, 야유를 보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이동국은 포항에서 태어나 포항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인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를 거친 뒤 포항에서 첫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포항스틸러스에서 ‘제1의 전성기’를 경험한 뒤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 진출했다가 K리그 전북으로 유턴했다. 이동국은 2009년 전북으로 이적한 뒤 두 시즌 내 포항에서 벌어진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친정팀 포항을 울리는 ‘악역’을 맡았다. 이후 포항팬들의 뇌리에서 ‘포항의 아들’이라는 이동국의 별명이 희미해져 갔다.

포항 팬들이 이동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안타까움과 섭섭함이 교차한다. K리그 개인 통산 최다 골과 최다 공격 포인트 등 화려한 업적 이면에 드리운 ‘월드컵 비운의 스타’라는 낙인을 지우려고 발버둥 치는 그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다. 한편으로는 ‘품 안의 자식’이란 말이 있듯 멀어져 버린 그를 향한 일말의 그리움이 포항팬들에게 섭섭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포항의 아들’ 이동국(41)이 멀리서 은퇴했다. 11월 1일 2020 K리그1 최종전을 끝으로 영광과 눈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23년의 프로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동국은 은퇴 회견에서 “내 축구인생 최고의 순간은 프로 유니폼(포항스틸러스)을 처음 받았을 때와 2009년 전북의 우승이었다”고 했다. 이동국이 포항에서의 첫 출발을 잊지 않은 것처럼 포항팬들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포항의 아들’로 자리하고 있다. 수고했다 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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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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