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자연 속에서 '소확행' 제대로 맛보세요

청암정 앞 왕피천

“아홉 구비 계곡을 돌고 돌아야만 태곳적 자연을 간직한 굴구지 마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울진군 근맘면 굴구지 산촌마을은 300년경 충주지씨(忠州地氏)가 개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왕피천 하류인 월호동에서부터 아홉 구비 너머어 마을이 있다고 하여 구고(九皐)라 불렸다.

아직도 이 마을로 가는 길 곳곳은 1차선으로 남아있어 대형차량의 통행은 여전히 어려움이 따를 정도로 방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은 40가구 1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대부분 농업과 임업에 종사하고 아는 사람만 온다는 입소문으로 야영장과 개인 펜션도 성업 중이다. 마을 주민의 주요 소득원은 가을철 송이다. 또한 왕피천 탐방로 2구간이 마을을 지나면서 겨울철을 빼고 3계절은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굴구지 마을 전경

△금강산도 식후경 ‘굴구지 8경은 보고 가셔야죠’.

굴구지 마을은 왕피천의 지류다.

1경인 왕피천은 영양 수비면과 울진 금강송면에서 흐르는 강물이 합류해 동해로 흘러간다.

이곳은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경관 보존지역으로 사람의 접근이 어려워 야생동식물의 천국으로 불린다. 산양과 수달, 하늘다람쥐를 비롯해 14종의 포유류, 60여 종의 조류, 23종의 양서류, 파충류 등 생물의 다양성이 잘 보존돼 있다. 굴구지 마을은 왕피천의 지류로 거친 물길을 헤치고 올라와 알을 낳는 은어는 물론 1급수 어종인 꺽지, 버들치, 피라미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수려한 계곡의 자태는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2경은 우리나라 대표 수종인 금강송이다.

구산리 삼층 석탑

마을로 향하는 산과 길에는 곧게 뻗은 금강송으로 조성돼 상쾌한 공기와 더불어 산림욕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이곳에는 경북 북부와 강원도에서만 자생하고 금강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표 금강송 군락지인 울진 소광리 일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마을로 들어서도 논·밭과 집터만 빼고 온통 금강송으로 둘러싸여 저녁이 되면 코로 들어 마시는 공기에서는 솔향이 느껴진다. 마을 입구에는 3경으로 꼽는 구산리 삼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보물 제496호로 통일신라(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석탑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청암사지(靑岩寺址)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곳 절터에는 사찰이 없어지고 불상 등 많은 유물도 없어졌으나, 기왓조각과 석축 등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사찰 경내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석탑은 이중기단(二重基壇)이 3층 탑신부(塔身部)를 받치고, 기단에는 우주(隅柱:탑신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 모양)와 탱주(撑柱:탑의 기단 면석 사이에 세우거나 면석에 돋을새김한 기둥 모양)가 본떠 새겨져 있다.

탑의 상륜부(相輪部)는 결실됐으나 3층 옥개석 위에 지름 23.5㎝, 깊이 7㎝의 원형 찰주공(擦柱孔)이 있다.

이삼소

4경은 이심소다. 이심은 용과 같은 상상의 동물로 ‘이무기’가 용이 되기 전의 상태로 물에 들어가 사는 동물이다.

이심소는 굴구지 탑평 마을 건너편 계곡에 있다. 옛날 탑평마을 지동지라는 사람이 아침 전 이곳을 지나다 만난 청년이 자신을 이심을 잡으러 온 사람이라고 소개한 뒤 이곳에 엄청나게 큰 이심이 살고 있다고 전해 이심소로 불렸다. 이심소는 하얀 바윗돌 사이에 움푹 패 물이 맑고 깊다.
 

청암정

5경은 청암정으로 옛 구고동 청암폭포 위에 있다.

이 정자의 서쪽에는 송로봉, 남쪽에는 칠성봉, 동쪽에는 항노봉이 우뚝 솟아 있는 빼어난 경관이 압권이다. 마을 입구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쪽 왕피천에 자리 잡고 있어 자동차를 세워두고 조금은 걸어야 만날 수 있다.

6경은 마을에서 남서쪽을 향해 솟은 칠성봉이다.

말 그대로 7개의 봉우리로 이뤄졌으며, 가장 높은 곳은 323m로 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1.7㎞로 조성돼 있다. 칠성봉은 마을을 내려다보며 감싸 안듯 둘러싸고 있어 어머니의 품 같은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7경은 용소다.

용소는 왕피천으로 흐르는 계곡 중 가장 접근이 어렵고 아름다운 곳으로 불린다. 마을에서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길에서 4㎞를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마침내 만날 수 있으며, 깎아지는 협곡 사이로 용이 지나간 모습의 계곡은 물이 깊다.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해 지금은 탐방이 금지돼 있다.
 

학소대

마지막 8경은 학소대다.

마을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다 보면 섬처럼 우뚝 솟은 바위를 만난다. 옛날 선비들이 찾아 주위의 절경에 심취해 시를 읊고 승덕비를 세웠으나 현재는 비는 없고 시문만 구전되고 있다. 학소대 방면으로 탐방로가 조성돼 가까이에서 전경을 감상할 수 있고 깊은 높이 때문에 아찔한 전율도 느낄 수 있다.
 

굴구지 MTB 코스

△숲에서 즐기는 다양한 레포츠와 체험.

주민 주도형으로 출발한 ‘왕피천 피래미 축제’는 지난 2008년 시작됐다.

산에서 먹고 즐길 수 있는 놀이와 문화를 접목하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하도록 만들었다.

축제는 여름이 오기 전 6월경에 열리며, 은어와 송어 그리고 피래미 잡기 등 옛 추억이 생각나는 놀이로 대부분 구성됐다.

아침에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점심에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저녁에는 잡은 물고기로 음식을 해먹는 일상적이지만 산골의 추억이 서려 있는 스토리텔링을 입혔다.

이곳 행사장을 찾은 관광객과 주민들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살아 숨 쉬는 자연에서 거친 산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즐기는 산악레포츠도 인기가 높다.

왕피천생태탐방로 2구간을 비롯해 오지마을 비포장 임도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특히 임도와 등산로는 거의 겹치지 않고 자동차는 출입이 통제돼 산악자전거를 타기엔 안성맞춤이다. 여기에 오르막 내리막 코스가 적절히 구성돼 재미는 물론 숲길이 주는 아름다움은 덤이다. 하룻밤 머물고 싶다면 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굴구지 산촌 펜션’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김형소 기자
김형소 기자 khs@kyongbuk.com

울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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