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혜 프리랜스 작가

끊임없이 자신만의 도학의 길을 찾아 침잠해간 사나이. 내면에의 깊은 탐구를 통해 시대의 비극을 극복하며 학문에의 탐구로 스스로를 갈고 닦은 사나이. 인생의 후반기, 225명의 제자를 훈도하며 인재 양성에 힘쓴 사나이. 바로 송계 한덕련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로 만나는 송계’는 송계 한덕련 선생의 삶과 도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기적 형태의 소설이다. 1956년 동짓달 열나흘, 연정마을의 동쪽 자근곡- 송계의 장례식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엔 설득력 있는 구성과 가상의 캐릭터들이 송계 선생의 일생과 긴밀히 연결되며 송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균형감 있게 작품을 이끌어 간다. 이종달, 김상구, 옥소 권섭, 박매남 등 여러 인물들이 송계와 얽혀가며 송계가 성장하고 자신만의 도를 쫓아가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되어준다. 물론 송계도 그들에게 굵직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송계의 삶은 요란하지 않다. 오히려 과하리만치 조용하다. 어마어마한 행적을 남기지도 않았고 당시대의 지식인들과 떠들썩한 교류를 나누지도 않았다. 온 인생을 걸고 타인이나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면에의 전투만큼은 누구보다도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

문집 20권과 속집 4권을 펴낼 만큼 열성적이었던 그. 세심을 실천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차이란 무엇일까? 팩트와 픽션의 경계에 놓인 내용이겠지만 산남의진 활동, 항일독립운동과 같은 굵직한 일을 해낸 상구와 같은 행동하는 지식인을 키워 낸 그의 저력은 무엇일까? 이게 소설의 한 구성이고 설정일 뿐일까? 실제로도 그런 인물을 키워내지 않았을까? 끊임없는 질문들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쓰임을 만들어낸다. 실존인물이 주인공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콘텐츠의 타당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밖에 없다. 픽션으로 만들어낸 서브 캐릭터와 일화들은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고 캐릭터의 성격을 공고히 한다. 팩트에 기반한 장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관광 콘텐츠 개발이, 이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웹툰,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다양한 클립 영상 등 수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문화의 힘이란 그런 데에 있는 것이다. 잊힐 시간조차 없이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인물을 이끌어 내고 그 인물에 이야기를 심어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표현해 준 작가의 역량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닌 전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송계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인물이 가상의 인물임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실존인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온전히 작가의 역량 때문이리라.

글을 쓰면서 자꾸만 송계와 상구가 함께한 옥정마을 앞 풍경이 어른거린다. 두 눈을 감으면 나는 이미 그 곳, 옥정마을에 서 있다. 검은 눈꺼풀 저 너머로 어느새 희뿌연 운무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서늘한 공기가 살갗을 자극한다. 저 멀리 푸른 풍경이 드러나고 나는 송계와 상구의 옆에 서서 화산에서 내려오는 공기를 폐부 가득 들이마신다. 선명하고 맑은 기운이 몸 안 가득 들어차면 교육자로서의 숙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송계가 된 것처럼 나도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문학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 단순히 1차적인 감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너머로 이어지게 되는 경험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선현들의 유적지를 두루 살피며 역사의 선두가 아닌 뒤에서 외롭고 슬프지만 결코 작지 않은 낙락장송의 삶을 살아간 송계의 인생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궁금하지만 마주할 용기가 없거나 그 방법을 알 수 없다고 한탄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송계 한덕련 선생의 삶을 통해 당신이 찾는 내면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