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수 대구본부 취재부장.

인자하게 안아 줄 듯 두 팔을 펼쳤다. 자세히 보면 온화한 미소까지 느껴진다. 1938년 대구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후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그룹을 만든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의 동상이다. 침산동 제일모직 공장 터에 세운 삼성창조캠퍼스에서 만날 수 있다. 2010년 대구 상공계가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높이 230㎝의 청동 입상을 만들었다.

호암 동상을 조각한 계명대 미대 출신 김규룡 조각가는 사업보국과 인재양성의 정신을 품은 덕망 있는 기업가의 정신을 표정과 동작으로 담으려 했다고 한다. 시민 누구나 가까이 다가가 만질 수 있는 높이를 고려했고, 인재를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두 팔 벌린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강조했다.

2010년 2월 11일 호암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던 지역 미술계 관계자는 삼성그룹 임원과 김범일 당시 대구시장 등이 호암 동상에 대해 호평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전국의 여러 호암 동상 가운데 대구의 동상이 가장 온화하고 인자한 미소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호암 동상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스토리가 입혀지면서 2010년 4월부터 호암 동상은 대구시티투어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에게까지 인기를 누렸다.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10월 25일 삼성창조캠퍼스 호암 동상 앞에서 촌극이 빚어졌다. 초소에서 뛰어나온 직원이 다짜고짜 취재 나온 사진기자를 막아섰다. 그는 촬영한 사진 파일을 다 삭제하게 하고서야 물러섰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찍는데도 유독 화를 내며 막았다. 3년 넘게 문을 굳게 걸어둔 삼성상회 복원 건물이 오버랩 됐다. 이날 해프닝은 삼성과 대구시민의 괴리감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온화한 미소로 두 팔을 벌려 포용하는 호암 동상의 정신을 이제 삼성이 진지하게 돌아보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삼성은 대구시민들이 글로벌 기업 삼성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화답해야 한다. 
 

배준수 대구본부 취재부장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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