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은상] 윤상희 '기적소리'
[수필 은상] 윤상희 '기적소리'
  • 경북일보
  • 승인 2020년 11월 04일 17시 57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1월 05일 목요일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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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춘양역 플랫폼에 섰다. 나란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철길과 반세기 만에 조우(遭遇)한다. 만나서는 안 되는 평행선이 저 멀리 소실점으로 만나 사라진 철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철길 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들은 나를 기억이라도 하는 것일까. 바람에 하늘거리는 여린 모습은 그 시절의 내 모습처럼 가냘프기만 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어쩔 수 없이 흔들려야 했던 젊은 날의 자화상을 코스모스가 불러온다.

“뚜~”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서서히 역으로 들어선다. 기적소리는 한순간에 세월을 되돌린다.

그날, 남편은 우유병과 기저귀를 챙겨 넣은 가방을 들고 앞서 뛰었다. 아기를 업은 나는 분명 뛰고 있었지만 걷는 듯 더디기만 했다. 저 멀리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산모롱이를 돌아오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어도 제자리걸음인 것같이 느껴졌다. 기적소리를 가늠해보면 기차가 우리 내외보다 먼저 역에 닿아 버릴 것 같았다. 철커덩철커덩, 끼이익-, 육중한 레일 소리가 헐떡거리는 숨소리만큼 크게 울렸다. 춘양역 플랫폼이 아득했다. 시그널은 이미 내려졌다. ‘제발 5분만 연착을 해다오.’

끼익-,기차는 또 한 번 기적을 울리며 우리 부부의 뒷덜미를 덮칠 듯했다.이내 기차가 역으로 들어서서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뛰면서 마른 울음을 삼켰다. 기차가 역에서 정차하는 시간은 1분 내외.가 겨우 승객 몇 명을 내려놓고, 다시 길게 ‘치익 푸욱’ 하며 하얀 증기를 뿜었다. 서서히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등엔 고열로 생사를 넘나드는 10개월의 아이가 업혀 있었다. 내 체온과 아이의 열기가 맞붙어 등짝이 불이 난 듯 뜨거웠다. 숨이 멎도록 뛰었다. 잠시의 여유에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연착의 기대도 잠시, 야속하게도 기차는 냉정하리만큼 정확한 시간에 역사를 빠져나갔다. 플렛폼엔 차가운 기운만 가득했다. 실낱같은 희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순간, 나는 기차가 떠난 철길을 바라보며 숨도 쉬지 못하고 울분을 토해냈다.

교통이 말할 수 없이 불편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경북 북부의 산골지방 면 소재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기차도, 버스도 드물게 오고 갔다.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는 며칠 보건소에서 주사와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병원이라고는 보건소뿐이었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에 겨울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들쳐업고 무작정 춘양역으로 달렸다. 어떻게든 막차라도 타야겠다는 생각이었으나 실패였다. 우리 부부는 한참을 플렛폼에 서 있었다. 그때 석탄 실은 화물 열차가 들어왔다. 역장께 사정을 얘기하고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나는 통곡했다. 사정을 들은 역장이 기관사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기관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화물차에는 사람이 탈 수 없으며, 가뜩이나 이렇게 추운 날씨에 열이 나는 아기를 화물차에 태운다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화물칸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열차 시간과 추운 날씨의 정황을 정확하게 헤아린 충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도 야속하던지 나는 또 한 번 통곡했다. 아이를 업고 역을 빠져나와 다시 보건소로 달렸다.

한밤중에 거칠게 보건소 문을 두드렸다. 깊이 잠들었던지 의사는 한참만에 문을 열었다. 원인을 가늠하기 어렵다던 의사는, 궁여지책으로 어른한테 쓰는 약의 극소량을 아이에게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약이 무슨 약인지 속속들이 따져 물을 여지가 우리 부부에게는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약 한 숟가락을 받아먹은 아이는 그 길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는지 의식을 잃었는지 그저 숨만 쉬었다. 아이를 안고 보건소 의자에 앉아 나도 잠이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불덩이 같던 아이의 몸이 정상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겨울 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경을 헤매던 아이가 벌써 장년이 되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자식들 예뻐라 물고 빠는 것을 볼 때면 그 먼 겨울밤 숨이 멎도록 내달리던 우리 부부의 다급했던 모습이 상기되곤 한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 놓은 아들이 제 자식을 아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애비 요새 건강은 어떠신가” 물으면 그저 “좋습니다, 어머니”하며 되레 “아버지, 어머니 건강부터 챙기십시오”하며 늙어가는 부모를 챙기는 모습이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그저 잘 살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가슴에 품은채, 하루에도 열댓 번씩 행복을 읊조린다. 행복과 불행은 갈래머리 땋듯 그렇게 엮어져 있는 것인가 보다. 기차를 놓쳤다고 해서 다 잃은 듯 통곡하던 그날 밤의 나와, 아이의 원인 모를 열을 잡기 위해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우리 부부와 의사의 탁월한 선택은, 숨 막히던 고통에서 숨통을 틔워준 영원의 기적소리 같았다.

철길 위로 바람이 스쳐 간다. 따사로운 햇살이 차가운 쇠에 부딪혀 쉬렁쉬렁 쉰 소리를 자아낸다. 오랜 세월 레일도 녹이 슬었을까. 드물게 오가는 기차와 몇십 년이나 묵은 바람 소리가 아직도 시리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자가용이 늘고 이용하는 승객이 드물기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춘양역일지라도 나는 기적소리에 막연한 꿈을 실으며 앞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걷고 또 걷던 길이다. 이 철길은 그날 밤, 절박한 내게 유일한 통로였으며, 삶의 출구이기도 했다.

누가 ‘쇠는 달구어야 단단해지고, 사람은 눈물의 힘으로 강(强)해진다.’고 했다. 철길 위에 주저앉고 싶은 좌절감에서 흐느끼는 내게 침목이 삶의 숙연함을 일깨워 주었다. 견고한 두 가닥의 철로가 거구의 화물 열차를 이기듯, 그이와 내가 두 발로 버텨보리라 옹골찬 다짐을 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소리는 소소한 행복 바이러스를 싣고 오는 듯했다.

열차가 역에 당도한 것을 알리는 기적소리가 아득한 기억을 싣고 들어선다. 육중한 쇠바퀴가 지금까지 삼켰던 레일을 기다랗게 게워내면서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철길 가에 서 있는 코스모스가 바람에 일렁인다. 강산이 몇 차례 나 바뀐 뒤에 다시 찾은 이 길은 지난 여정을 자꾸만 돌아보게 한다. 삶의 길목마다 깃든 추억과 인연들이 두 가닥의 평행선 위로 그려졌다가 지워져 간다. 그때 그 사려 깊었던 기관사와 역장,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코스모스처럼 눈물 많던 새댁은 어디 가고 머리 위로 흰서리 가득한 내가 여기와 섰는가. 쏟아지는 물음표에 답은 없고 바람만이 내 발아래로 감겨와 철로를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 반백 년 만에, 이 길을 다시 걸으며 내가 견딜 수 있는 그 가만한 바람에 감사한다.

춘양역의 철길은 지금 햇살 아래 노곤한 꿈을 꾸고 있다. 아지랑이를 그리며 멀리 사라져가는 저 길이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 삶의 끈이 되고 있으리라. 얼음처럼 시리던 그 침목이 내 삶의 버팀목이었음을 이제 사 깨닫는다.

여운처럼 들려오는 기적 소리를 들으며 다시 철길을 뒤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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