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아끼다’라는 말이 있다. 아낀다는 것은 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함부로 쓰지 않고 꼭 필요한 데만 쓴다는 말이다. 돈이나 물건을 지나치게 아끼는 구두쇠나 자린고비와는 다른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아끼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너무 쩨쩨하게 보일 수도 있고, 남과 어울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함부로 흥청망청 낭비할 수는 없어도 적당히 쓰고 살아야 할 때가 많다. 자린고비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알뜰하게 재물을 모아 사회에 환원해 좋은 일을 한 사람들도 드물게 있어 사회의 존경을 받고 인구에 회자되는 일도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낌의 미덕일 것이다.

재물을 함부로 쓰지 않고 절약하는 것도 미덕이라 할 수 있지만 재화는 적당히 쓸 때 친구도 생기고 따르는 사람도 많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주머니는 열고 입은 닫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주머니를 열 줄 아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주머니를 열라고 하는 것은 베풀라는 말일 것이다. 꼭 필요한 곳이 아니라도 적당히 쓰고 즐기며 사는 것이 여유로워 보인다. 친구와 술도 한잔하고 여행도 즐기면서 형편에 따라 느긋하게 살아볼 일이다. 아낌의 미덕보다 적당히 낭비하는 미덕이 더 현실적이고 좋아 보인다.

당대의 갑부 누구도 빈손으로 갔고, 왕후장상도 다 빈손으로 간단다. 이 말은 빈손을 찬양하는 말이 아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니 베풀고 살라는 말이다. 빈손으로 왔기에 사는 동안 빈손을 채우면서 살다가 갈 때는 나누어주고 다시 홀가분하게 빈손으로 가라는 말일 것이다. 빈손으로 왔으니 내내 빈손으로 살다가 빈손으로 가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색즉시공이라고 한다. 모든 색을 공이라 했지만 그 공은 그냥 공이 아니라 색을 창조해낼 수 있는 공인 것이다. 공즉시색의 공, 색을 바탕으로 한 공인 것이다. 공이 없는 색이 없고 색이 없는 공이 없는 것이다. 채워보지 않은 사람이 비움의 기쁨을 알 리가 없다. 비워져 있어서 채울 수 있고, 채워져 있기에 비울 수 있는 것이다. 채워져 있어야 빈손의 미덕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채움의 미덕, 아낌의 미덕이 있는 것이다. 비우기 위한 아낌의 미덕인 것이다.

아낌의 미덕이라 했는데 비움과 관계없이 아끼는 것이 좋은 것은 말(언어)이다. 말은 아끼고 주머니는 열어라. 주머니가 아니라도 귀를 열어라. 많이 들어야 한다고 귀는 둘이고 입은 하나다. 하나의 입이지만 말보다 먹는 일도 하고, 코를 도와 숨을 쉬기도 하고, 사랑도 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한 뒤 정말 해야 할 말만 하는 것이 미덕이다. 입이 화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낌의 미덕중에서 첫째가 말 아낌이다.

말도 아낄 말을 아껴야지 너무 아껴서 평생 후회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사랑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보낸 이의 회한을 듣는다. 얼마나 안타까우랴. 사랑한다는 말뿐이겠는가. “참, 잘했다”, “참, 아름답구나”

다른 이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칭찬하는 말은 아낄 필요가 없다. 말 자체가 듣는 이에게 힘을 줄 수 있다. 너무 헤프게 사용해서 오히려 모멸감을 줄 수도 있지만 사랑의 말, 칭찬의 말, 믿음의 말은 아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새삼 아낌의 미덕, 특히 말 아낌, 입 닫음의 미덕을 말하고 싶어졌다. 흔히 말 잔치에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끼어들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잘 쓰지도 않는 현학적인 말을 어디서 골라와 남의 귀를 끌고 눈을 끌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해 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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