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미국 대선의 혼란 양상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개표 중단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고 양측의 지지자들이 유혈 충돌을 할 정도로 격앙된 가운데 당선인 확정이 상당히 늦어질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일이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알려진 미국에서 일어난 것이 가장 충격적이다. 하지만 가만히 복기해 보면 혼란의 시작은 이미 한참 전이고, 오늘의 야단법석을 예견했던 이들도 많았다. 미국은 이제 우리가 알던 그 미국이 아니고, 민주주의 역시 우리가 알던 그 민주주의가 아니다. 물론 미국이 트럼프 한 사람 때문에 바뀌었다고 말한다면 미국을 과소평가하고 트럼프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된다. 그는 혼란의 원인이 아니라 그것을 대표하는 정치가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변화는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카톡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정치에 들어와 생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트럼프는 독특한 사람이지만, 그의 독특함은 지난 4년 동안 적극적으로 이용한 트위터라는 SNS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선거의 상대 후보인 조 바이든이 선거에 이기면서도 존재감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SNS는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겨서 이번 선거를 두 후보에 대한 지지 경쟁이 아닌 트럼프에 대한 찬반투표로 만들어 버렸다.

SNS는 많은 장점을 가진 소통의 통로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알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 우선 전파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중요한 이슈에 대한 숙고의 시간을 앗아간다. 물론 국가의 운영과 정책에 관한 소식이 투명하고 신속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러나 복잡하고 중대한 결정들은 행정과 입법 기관들의 전문적인 검토와 숙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 그 일을 수행할 사람들을 정하고 일정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대의민주제도의 원리인데, SNS를 통한 소통은 이런 과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가짜뉴스를 통제하기 힘든 것도 큰 문제다. 일국의 대통령이 허위사실이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무시로 공공에 퍼뜨리는 것도 황당하지만, SNS의 공간에서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그 확산을 차단하기도 어렵다. 선거나 개표 기간에 퍼지는 가짜뉴스는 치명적인데 여기에 정치인이나 언론인까지 발을 담그면 그 피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SNS는 ‘관계망’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경쟁의 공간이다. 비슷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게 된다. 또 이 공간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영향력을 가지려면 지루한 논변이나 증거보다 짧고도 자극적인 선동이 더 효과적이다.

트럼프의 4년 동안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이 그의 본을 따랐을 뿐 아니라, 기성 언론들도 SNS와 경쟁하면서 그 단점을 흡수해 버렸다. 우리나라의 정치인과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특정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곧바로 살짝 왜곡된 자극적 표현을 써서 입장을 표명하고 기사를 내는데 급급하다 보니 정치에 대한 냉소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동시에 사회는 극단적으로 양분되고 있다.

기술의 거대한 흐름을 강제로 돌릴 수도 없고, 이번 미국 선거에서도 보듯 일정한 정치적인 효과도 있는 SNS의 이용을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소통방식이 우리가 알던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의 제도를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정보의 시대에 사용하다 된서리를 맞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좋은 반면교사다. 우리가 알던 민주주의의 원칙과 대의를 지키는 방식으로 SNS를 지혜롭게 이용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이 매체를 건설적으로 포함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식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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