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2021년 4월 7일 실시 될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은 후보를 못 내게 되어 있었다.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 제96조 2항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단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라는 문구를 더하는 개정안을 채택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약속 파기,” 정의당은 “책임정치의 절연,” 국민의 당은 “신뢰의 배신,”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민주당의 뒤집기 행태를 맹비난하고 있다. 물론 야당의 주장은 민주당의 공천 결정으로 손쉬운 승리를 놓친 데 대한 분노의 표현일 뿐이다. ‘힘의 획득과 유지’라는 정치적 속성에서 여와 야가 다를 바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민주적 결정원리를 대입하면 어떨까?

정책 결정에서 목적을 우선시하면 독재, 과정에 무게중심을 두면 민주라고 한다. 목적은 권력자가 지향하는 바를 말한다. 과정은 충분한 토론 후 결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목적을 따르면 구성원의 인권과 의사가 무시된다. 반대나 토론을 허용하면 목적을 이룰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이다. 과정을 따르면 목표달성이 어렵거나 일부분만 달성할 수 있다. 토론의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사가 집약되어 결과로 산출되기 때문이다. 독재체제에서 권력자가 철인(哲人)이라면 구성원은 평안해진다. 그런데도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선(善)한 정권이라고 할 수 없다. 민주체제에서 구성원의 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구성원의 만족감은 높아진다. 배가 조금 고파도 자신의 의사대로 국가가 운영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당헌개정은 일사천리다. 10월 29일 의원총회에서 당헌 제96조 2항의 개정을 결정했다. “당헌개정을 통한 내년 재보궐 선거를 위한 전 당원 투표”를 10월 31일 오전 10시~11월 1일 오후 6시까지 온라인으로 실시했다. 11월 2일 찬성 86.64% 반대 13.36%의 결과 발표했고, 같은 날 당무위원회에서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최종 의결은 전국대의원대회 재적 대의원 과반수의 찬성 또는 재적 중앙위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당헌 제108조). 10월 3일 온라인 투표를 통해, 99.7%의 찬성으로 변재일 의원을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투표가 쉬운 중앙위원회를 가동하려는 조치다. 같은 날 온라인 투표를 통해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중앙위원 478명 중 327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316명이 당헌개정에 찬성했다.

민주당의 당헌개정은 규정상 문제는 없다. 당무위원회의 발의와 중앙위원회의 의결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당헌 제107~108조 참조). 문제는 당헌 개정안을 당원에게 알리고 합의를 구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점이다. 당헌은 정당의 근본 법으로서, 국가로 치면 헌법에 해당한다. 그만큼 개정에는 토론과 합의 등 신중한 절차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혹은 재적의원 과반수 국회의원 발의 → 대통령 20일 이상 공고 → 재적의원 2/3 이상으로 국회 의결 → 과반 참여 과반 찬성의 국민투표로 확정 → 대통령 공포.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헌법개정 절차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당무위원회의 발의일 기준 1일, 전 당원 투표일 기준 3일, 의원총회일 기준 5일 만에 당헌개정이 마무리되었다. 민주당의 행태가 얼마나 목적 지향적인지 보여준다.

민주당은 전 당원 투표를 근거로 당헌 제96조 2항을 개정했다. 권리당원 803,959명의 26.35%인 210,804명이 참여하여, 86.64%인 182,640명이 당헌개정에 찬성했다. 21대 총선 이전에도 권리당원 789,868명의 30%인 241,559명이 참여하여, 74.1% 179,096명이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창당에 찬성했다. 투표율은 낮아지고 찬성률은 높아진다. 지도부와 충성당원 중심으로 민주당이 운영된다 의미다. 소신파인 조응천 의원, 박용진 의원, 김해영 전 의원은 왕따를 당하고 있고 금태섭 전 의원은 탈당했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과정 지향적 행태도 함께 없어지면서, 일사불란한 조직으로 변화한다. 우선은 선거와 야당의 공격에 대응하기 쉽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체된다. “고인 물이 썩는다”라는 속담이 정당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알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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