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서 쏟아지는 총알 두렵다…주민들 살 방법은 사격장 폐쇄뿐"

수성사격장을 둘러싼 주민과 국방부의 간담회가 마련된 지난달 27일 오후 1시 포항시 남구 장기면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들이 반대집회를 하고 있다,

포항 장기면 수성사격장 폐쇄와 사격훈련 강행을 놓고 주민과 군 당국이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는 가운데 사격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여 최악의 경우 물리적 충돌까지 번질 것으로 예상된다.

9일 해병대 등 군 당국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오는 16일부터 4주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사격장에서 아파치헬기를 사격훈련에 돌입한다.

이번 훈련은 지난달 12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극심한 주민 반발로 인해 1개월가량 미뤄졌다.

애초 주한미군의 아파치헬기 사격훈련은 경기 포천 로드리게스 훈련장에서 이뤄져 왔지만 로드리게스 사격장 인근 주민들의 시위와 민원이 끊이지 않자 올해 2월부터 포항 수성사격장으로 옮겨 훈련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장기면 주민들은 훈련 중지와 훈련장 폐쇄를 촉구하는 상황이다.



△주민, “포천은 안되고 포항은 되나”.

포천 로드리게스 사격장은 주한미군 최대 훈련장(약 1322만㎡ 규모)으로, 주한 미2사단 전차·장갑차 등 기갑부대와 포병부대, 아파치 공격헬기 부대 등이 훈련해왔으며 제병협동 훈련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지난 2018년 나무·바위 등에 맞아 표적 외에 떨어지는 도비탄 사고 등으로 인해 로드리게스 사격장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면서 1년 이상 훈련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에 미군 측은 2018년 1~5월 해당 사격장의 안전 확보를 위해 130억원을 들여 공사에 나서기도 했지만 주민 반대에 결국 헬기 사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포항 수성사격장(약 1246만㎡ 규모)을 대안책으로 삼았다.

수성사격장은 50여 가구, 130여 명이 사는 마을에서 약 1㎞ 떨어져 있다.

더 좋은 입지조건을 가진 포천 로드리게스 훈련장을 두고 주민 반대를 이유로 훈련장을 포항으로 옮긴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주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수성사격장반대대책위원회(이하 반대위) 등 장기면 주민들은 “한마디 상의 없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총알이 쏟아지는데 두려움에 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국방부는 훈련장을 교체하는 이유로 주민 반대를 꼽는데 우리도 1965년부터 55년째 각종 군사훈련에 고통받아 왔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구를 따져봐도 15만명이 사는 포천에서 50만명이 넘는 포항으로 훈련장을 옮긴다는 게 말도 안 된다”면서 “그간 미군 아파치헬기 사격훈련 중단을 위해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에 장기면민 과반수가 서명한 탄원서를 제출하고, 수차례 항의집회를 여는 등 사격훈련 중지를 요청했지만 결국 국방부에서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예정대로 사격훈련을 강행하려 한다. 장기면민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반드시 사격훈련을 막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 “훈련 중단은 안 돼…민·관·군 소통 해야”.

장기면민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훈련을 진행하는 한편, 민·관·군 협의체를 구성해 소통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지난 4일 오후 포항기 장기면 수성사격장 인근 도로에서 사격장 폐쇄를 요구하는 주민시위 현장에서 “한미동맹과 국가안보차원에서 미군 아파치헬기 사격훈련은 중단할 수 없다”며 “주민대표를 선출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협의체 구성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장기면을 비롯해 전국 곳곳 군사훈련시설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군 당국은 훈련할 곳이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파치 헬기사격장을 예로 들면 수성사격장이 유일한 훈련장이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수성사격장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체 구성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훈련 중단이 우선이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군 당국이 장기면 주민들을 상대로 개최하려고 했던 간담회는 총 3번이며, 이들 모두 실패로 이어졌다.

지난 4일 시위현장을 찾은 박 차관이 주민들의 훈련 중단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분노가 커진 주민들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박 차관은 쫓기듯 현장을 벗어나고 말았다.

이보다 앞선 지난달 27일 오후에 장기면행정복지센터에서 간담회를 열고 수성사격장 관련 주민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간담회 30분 전부터 모여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사격장 폐쇄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면서 파행을 맞았다.

또 지난달 1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장기면 주민과 국방부 관계자 간담회는 개최 10여 분 만에 끝났다.

현재 장기면민들이 원하는 ‘훈련 중단·훈련장 폐쇄’와 국방부의 ‘훈련 강행·협의체 구성’은 수 개월 째 답보상태에 놓여있다.

한편, 주민들은 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벌일 예정이며 사격훈련을 강행할 경우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9일 반대위에 따르면 장기면 주민들은 오는 10일 아파치헬기 사격훈련 중단과 포항 수성사격장 폐쇄를 위해 차량 100대 이상, 3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승차 집회를 열기로 했다. 또 사격훈련에 앞서 사격장 입구 도로를 막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조현측 반대위원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사격장 소음을 참고 살아왔는데 말도 없이 미군 헬기가 날아와 포탄을 쏟아내고 있다”며 “장기면 주민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사격장 폐쇄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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