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역사책에는 수많은 악인(惡人)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선인(善人)보다는 악인이 훨씬 많지 싶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나라가 한 번 망했던 역사가 있는 나라에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역사의 죄인이 되는 악인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가까이는 조선 말의 세도정치가들과 그 일족, 그리고 을사오적을 위시한 경화(京華) 사족들과 그 주변, 일제강점기 하에서의 친일파들(생계형 포함)과 그 식솔들, 그리고 이념 대립기의 반대파들(좌우를 막론한)은 21세기 현재에도 생생하게 악인 취급을 받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국토의 곳곳에 동상을 세워 기리는 역사의 위인들은 너무나 그 수가 적습니다. 가히 일당 만(萬)입니다. 이순신 장군 한 사람이, 또 김구 선생 한 사람이 수천 명의 역사의 죄인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 게 역사 기록입니다. 잘못을 선명하게 남기는 것, 그게 역사의 존재 이유일 것입니다.

역사적인 악인도 많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의 악인’도 많습니다. 수십 년 공직자로 사회생활을 해 본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특징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잘 웃지 않는다. 웃어도 활짝 웃지 않는다. ② 계산에 밝다. 손익을 빨리 판단한다. ③ 편을 잘 가른다. 늘 행동을 함께할 동지(同志)를 모은다. ④ 매사 주장이 강하다. 궤변에 능한 편이다. ⑤ 돈을 잘 쓴다. 특히 부조금 액수가 크다. ⑥ 옷을 잘 입고 이성에게 잘한다. 가족을 끔찍하게 챙긴다. ⑦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해야 한다. 질투심이 강하다. ⑧ 타인의 감정에 무심하다. 잔인하다는 느낌을 종종 준다. ⑨ 본인은 항상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고 떠든다. 존재감 과시를 위해 억지로 불의를 조장할 때도 있다. ⑩ 궁지에 몰리면 얼굴을 붉히며 공격적이 된다. 그런 때는 보통 눈빛이 달라진다.

위의 악인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악인과 ‘못난이’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잘난 사람들 중에 악인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불만이 많다. 욕심이 많다. 겉모습이 거만하다. 종교를 믿지 않는다. 가부장적이다. 생각이 많다.”와 같은 평가 요소는 꼭 악인의 특징으로 간주 될 필연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은 선악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역사의 죄인들도 살아생전 활동을 할 무렵에는 위에 든 ‘생활의 악인’이 보여주는 제반 특징들을 고루 보여주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이 활동한 영역이 나라의 존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고 큰 것이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일 뿐입니다. 역사적으로 악인인 사람이 생활적으로는 선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고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가서도 새는 법이니까요.

공직생활을 조만간 마감해야 하는 입장에서 ‘악인 열전(列傳)’이라는 글을 쓰는 감회가 좀 착잡합니다. 혹시라도 주관적으로 작성한 위의 악인의 열 가지 특징 중에 몇 개라도 남들에게 보이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라는 자책감도 듭니다. 어려서부터 ‘착한 사마리아인’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선한 자의식에도 회의가 듭니다. 과연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왔는가라고 자문을 해 볼 때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신의 보전(保全)에 더 연연하며 살아온 평생이었습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악인은 세월이 흘러도 악인입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납니다. 지금껏 단 한 명도 개과천선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악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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