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문턱도 못 가보고 열일곱에 아버지한테 불려 산 넘어
시집갔다 방 두 칸 움막에 시어머니 한 칸 시누 시동생들 한 칸
이니 새 신부 잘 방이 없어 외양간 벽에 덧대 하꼬방 들였다 아
궁이 불 때다 불려가고 시누들 속곳 빨다 불려가고 서방은 개코
나 술대장이라 주막집 주인한테 불려가 솔가리 긁어 술값 갚았
다 장날엔 파출소 불려가고 밭도지 주인한테 불려가고 그 많은
세월 불려만 다니다 시어미 죽고 술병에 남편 죽고 아들 둘 딸
하나 청상에 먹고 살라 불려 다니고 이날 입때껏 불려만 다녔노
라고 이제 한 번만 불려가면 아주 고만이라고 오월 사과나무 아
래서 쏙닥쏙닥 가위질하며 어린 사과 솎아내는 늙은 어매


<감상> 시 한 편에 긴 서사를 담아낼 수 있다니 놀랍지요. 우리 어머니는 참 한(恨)이 많은 세대이지요. 이 한스러움 때문에, 혹은 자식들 때문에 삶을 견뎌냈을 겁니다. 우리 어매는 초등학교 중퇴한 게 부끄러워 초등학교 졸업이라 우겼지요. 글을 쓸 줄 몰라서 한 번도 재산권을 가진 적이 없지요. 늘상 불려만 다닌 건 이 시와 매한가지입니다. 불려 다닌 건 고사하고 시부모의 죽음도 어매 탓, 집안 살림 못 불리는 것도 어매 탓, 농사 잘되고 못 되는 것도 어매 탓, 자식 잘되고 못 되는 것도 어매 탓, 모두 어매 탓입니다. 죽음이 딱 한 번 부르니 아무도 어매 탓을 못합니다 그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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