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선상봉황시장·대구 월배시장, 이마트 입점으로 '상생 행보'
상가 내 청년몰·키즈카페 등 들어서 3040세대 발길 붙잡아 활력

지난 7일 오전 방문한 경북 구미시 선산읍 선산봉황시장은 생동감이 넘쳤다. 김현수 기자 khs87@kyongbuk.com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최근 5년간 소상공인이 기업형 슈퍼마켓을 대상으로 신청한 사업조정은 142건이었다고 밝혔다. 이 중 10건 중 7건이 이마트 계열사의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마트 노브랜드의 경우 76건으로 이마트 에브리데이(20건) 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렇듯 무분별한 골목상권 침해로 논란이 가중되는 이마트 노브랜드가 전통시장과 상생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전통시장에 입점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그들은 어떻게 골목상권과 상생할 수 있었는지 현장에 직접 가봤다.



“대형마트 찾아 구미 공단까지 갔는데 이제는 가까운 시장으로 와요. 키즈카페 덕에 장보기가 수월해 애 엄마들 사이에서는 인기 짱이에요.”

지난 7일 오전 방문한 경북 구미시 선산읍 선산봉황시장은 생동감이 넘쳤다. 이날은 전국 오일장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인 선산 오일장이 열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봉황시장 A동 2층에 입주해있는 이마트 상생스토어 ‘노브랜드’를 찾은 고객들의 카트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어있었다. 봉지에는 전통시장에서 산 신선한 야채와 과일, 수산물 등이 들어있었다.

김모(45·여)씨는 “대형마트에 파는 물건을 사기 위해 구미 공단까지 다녔는데, 이마트 노브랜드가 생기고 매주 방문하는 것 같다”며 “시장에서 장도 볼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40년간 봉황시장에서 축산물을 팔고 있는 이모(30대)씨도 봉황시장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20년간 비어있던 시장 2층 상가는 모두 청년몰로 채워졌고,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를 찾는 젊은 층의 시장방문 횟수가 늘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이수영(36·여)씨는 “인근 중·소 마트에 팔지 않는 물건들이 많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들리는 것 같다”며 “마트에 오게 되면 자연스레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곤 간다”고 했다.
 

시장에서 만난 김모(45·여)씨의 카트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어있었다. 봉지에는 전통시장에서 사 온 야채와 과일 등 신석식품이 가득했다. 김현수 기자 khs87@kyongbuk.com

◇쇠퇴하는 시장…대형마트와 상생으로 돌파구 마련.

봉황시장은 1993년 오일장에서 현대식 장터로 상시운영하고 있다. 현재 106개의 점포에 다양한 신선식품을 팔고 있는 유서 깊은 시장이지만 전국의 다른 시장과 같이 최근 어려움을 겪었다. 봉황시장 A동 2층 1650㎡ 면적이 20년 넘게 비어있을 정도였다. 시장이 위치한 선산읍도 과거에는 하나의 군을 이룰 정도로 큰 동네에서 현재는 구미시의 한 개 읍 정도로 축소됐다.

상인들이 죽어가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도움을 청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형마트인 ‘이마트’였다.

청년상인 김수연(42·여)씨는 구미시와 중소기업청이 시장 내 빈 점포를 청년의 창업공간으로 제공하는 ‘청드림 몰’ 사업에 참여하면서 봉황시장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은 잘 풀리지 않았고,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김씨는 “일본의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와 협업을 통해 상생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2016년 당진어시장에 처음으로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오픈했고, 봉황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기 위해 직접 시장 상인들을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봉황시장 A동 2층 공간에 입주해 있는 청년몰. 김현수 기자 khs87@kyongbuk.com

김씨의 노력에 상인회와 구미시도 노브랜드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결국 당진어시장에 이은 전국 2번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봉황시장에 문을 열게 됐다.

이마트는 20년 넘게 공실로 방치된 봉황시장 A동 2층 공간을 리모델링했다. 이 중 420㎡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로 꾸몄고, 나머지 면적은 공방, 네일샵, 옷가게 등 청년상인이 운영하는 청년몰을 조성했다.

또 노브랜드 매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청년몰을 거치도록 설계했고, 전통시장의 주력상품인 신선식품을 제외한 공산품 위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봉황시장 A동 2층 노브랜드 맞은편에는 키즈카페가 입점해 있다.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 김수연씨 제공.

◇시장에 생긴 키즈카페, 30∼40대 방문자 늘었다.

봉황시장 A동 2층 노브랜드 맞은편에는 키즈카페가 입점해 있다. 봉황시장에 입점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시장 활성화를 위해 국내 전통시장 최초로 키즈카페를 오픈한 것이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상생을 위해 마련한 곳인 만큼 입장료는 2시간 기준 2천 원이다. 키즈카페에는 미끄럼틀 등 놀이시설, 레고와 옥스퍼드, 부엌놀이 등 다양한 장난감도 구비 돼 있다.

키즈카페를 관리하는 신귀주(66·여)씨는 “코로나로 지난 2월 문을 닫았다가 7월에서야 재오픈 했다”며 “코로나 이전에는 아이들만 20∼30명 놀러 오는 등 30∼40대 부모들이 많이들 찾는다. 아이들은 키즈카페에 맡기고 마음 편히 장을 보러 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키즈카페를 관리하는 신귀주(66·여)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 키즈카페를 찾는 아이들이 20∼30명이 넘을 정도로 많이 찾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현수 기자 khs87@kyongbuk.com

키즈카페는 소외계층 어린이들에게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차상위계층 어린이들은 키즈카페 입장료가 무료다.

김선희(37·여)씨는 “오히려 아이들이 시장에 가자고 조르기도 한다”며 “다양한 장난감을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보니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결합 시너지는 젊은 층의 전통시장 방문에 있다. 전통시장 내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매출액도 30~40대 고객이 전체의 64.2%를 차지하는 등 젊은 층의 시장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봉황시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주말에는 400∼500명 평일에는 200∼300명의 손님이 찾고 있다.

청년몰에 입점해 있는 최모(43)씨는 “연중 무휴로 장사를 했지만, 노브랜드 휴무일에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겨 노브랜드 휴무날 같이 쉬기로 했을 정도”라며 “노브랜드 입점으로 시장이 젊어졌다”고 환하게 웃었다.
 

월배시장에 입점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전경.

◇이마트로 쇠퇴하던 월배시장, 이마트와 손잡다.

1985년 문을 연 월배시장은 대구 남서부의 대표 전통시장이었다. 주변 인구가 많고 대로에 인접해 1996년에는 38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90년대 후반 경기 침체와 인근의 이마트 진입 등으로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시장쇠퇴의 원인이 ‘이마트’라고 여겼던 상인들이 2017년 이마트가 내민 상생의 손을 잡기까지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손병석 월배시장 상인회장은 “당시 시장상인들은 2001년 개장한 이마트가 시장 손님을 다 뺏어 갔다고 여기고 있었다”며 “하물며 전통시장 안에 대기업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상인들의 반발이 만만찮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상인들의 숱한 반대에도 손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시장의 몰락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방문객이 줄며 상인들도 떠나가 상가 절반 이상이 공실로 남아있었다”며 “시장 중앙 대형 상가가 통으로 공실로 남아있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말했다.

손 회장과 시장상인들의 노력으로 2018년 8월 월배시장에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6호점이 오픈했다.

월배시장 A동 1층에 있는 월배시장 상생스토어는 1천134㎡ 규모로 노브랜드 매장 460㎡, 신세계 이마트 희망놀이터 168㎡, 커뮤니티센터 35㎡, 달서구 사회적경제기업 홍보관 47㎡, 카페, 쉼터로 구성됐다.
 

지난 6일 오후 월배시장에는 아기띠를 멘 20∼30대 주부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김현수 기자 khs87@kyongbuk.com

◇‘노브랜드’와 찰떡궁합 ‘월배시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에서 질 좋은 공산품들을 저렴하게 판매하자 월배시장을 찾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어린이 놀이터와 쉼터, 커뮤니티센터 등 다양한 쉼터는 시장에 젊은층을 유입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노브랜드 입점 전 50여 개에 불과하던 상가는 2년이 지난 현재 73개 매점과 29개 노점으로 2배가량 늘어났다.

지난 6일 찾은 월배시장에는 아기띠를 멘 20∼30대 주부를 심심찮게 만나 볼 수 있었다.

3살난 아이와 함께 시장을 찾은 이은주(33·여)씨는 “주방용품과 맥주를 사러 노브랜드를 들리러 시장에 왔다”며 “요즘엔 시장에서 간단한 간식을 사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월배시장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들어선 뒤 옷이나 속옷 등 공산품 매점보가 먹거리 매장이 크게 늘었다.

젊은층의 발길도 이어졌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장에서 호떡과떡볶이이 등을 사 먹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월배시장에서 30년 동안 전기 관련 설비를 해온 이안기(59)씨는 “원수처럼 여겼던 이마트가 월배시장에 들어온다는 소리에 속된말로 데모도 했다”며 “하지만 노브랜드가 입점하고 젊은 사람들이 시장을 많이 찾아 활기가 돌고 있다. 상인과 대기업 모두 만족할 만한 상생을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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