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 케인 변호사
하윤 케인 변호사

명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백 미터 밖에서도 알아보는 가방이 있다. 바로 에르메스의 버킨백이다. 가장 저렴한 가방도 천 만원이 넘는 에르메스의 버킨은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하는 가방으로도 유명하다. 에르메스의 초대를 받아야만 가방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종 블로그와 유튜브 등에는 에르메스 가방 사는 팁이나 성공 스토리로 가득하다.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간다고 버킨백을 볼 수 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옷, 벨트, 스카프, 넥타이 등 다양한 상품이 있지만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들은 아무나 볼 수 있는 진열장에 있지 않다. 구매 내역 등이 확인된 VIP에게 직원이 제품이 있다고 알려준 후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고객을 안내한다. 그 곳에서 비로소 버킨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에르메스가 가방의 색이나 재질 등 수량을 관리하기 때문에 제품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색과 질감의 가방을 반드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인기 많은 색이나 희귀한 색상의 경우 중고가가 소비자 가격보다 높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유서 깊은 경매 하우스인 크리스티에서는 악어가죽이나 타조가죽 등 희귀 가죽으로 된 버킨백이나 다이아몬드 장식이 된 버킨백이 종종 등장하여 가방 애호가들의 경쟁에 불을 붙인다. 가장 귀하다는 히말라야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진 버킨백은 한화로 이 억 이상이다.

에르메스의 또 다른 대표 가방은 켈리백. 모나코의 공주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언론으로부터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 가방으로 배를 감추며 그녀의 이름을 따 ‘켈리백’이 되었다. 역사가 깊은 이 가방 역시 천 만원을 웃도는 가격에 초대받은 VIP만이 가방을 볼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받는다.

보기도 쉽지 않은 이 가방들을 40만원에 살 수 있다면? 한국 브랜드 플레이노모어(Playnomore)는 에르메스의 버킨, 켈리백과 비슷한 디자인의 시퀸으로 눈알 장식을 한 가방을 판매하며 인기를 얻었다. 무게감 있어 보이는 에르메스의 디자인과는 달리 톡톡 튀는 시퀸 눈알 장식은 가방을 매우 키치하게 만들며 이목을 사로잡았다.

에르메스는 이에 플레이노머의 제품이 디자인 도용이라며 2015년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의 ‘버킨백’과 ‘켈리백’과 유사한 디자인에 눈알 모양 도안을 부착한 가방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1심은 소비자가 플레이노머 가방을 구매하는 이유 중 ‘켈리백과 버킨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방의 형태로부터 인식되는 상품의 명성이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구매동기가 된다’고 판단하여 에르메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에르메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심은 ‘국내 업체 제품의 창작성과 독창성 및 문화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고들에게 에르메스 제품 형태의 인지도에 무단으로 편승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부정경쟁행위로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팝아트 디자인의 톡톡 튀는 눈알 디자인을 배치한 점에서 독창성을 인정받은 플레이노모어는 2심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에르메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대법원까지 사건을 가지고 갔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은 럭셔리 가방의 명성을 생각하면 에르메스가 자사 대표 가방의 디자인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법원은 ‘에르메스백 일부 모델은 플레이노모어백과 전체적으로 유사해 보이고 플레이노모어 제품을 눈알 디자인이 없는 후면과 측면에서 보면 에르메스백과 구별이 쉽지 않다’고 판시했다. 제품의 특정 부분이 아닌 전체 인상을 보고 두 제품이 비슷한지 확인한 것이다. 대법원은 두 브랜드의 가방이 비슷하기 때문에 플레이노모어백이 계속 판매되면 에르메스 가방의 판매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부정경쟁이라고 봤다. 결국 5년 간 이어진 소송은 에르메스의 승리로 마무리되며 플레이노모어는 더 이상 눈알 가방을 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 대법원의 판단은 세계적인 추세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독창적인 디자인이 많이 탄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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