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셔야 할 독의 양만큼
단풍 화물을 실은 기차가 오긴 했다
내 눈동자 안쪽 미로의 갱도에서 서행하는 기차는
증기열차
여정을 단축하는 기차가 있다면
피를 토하는 기관사도 있다
커브에서 덜컹거리는 게 너무 깜깜하여
붉은색과 노란색이 서로 치명적인 줄 알겠다
멀어져가는 선로가 흑백으로 바뀔 때쯤
간이역이 마중 나왔다
잡목림이 말끔하게 하역한
붉은색과 노란색 음역(音域)은
간이역 확성기의 힘을 빌려
번질 대로 번졌다
단풍 화물차에게
붉은색과 노란색 땔감은 더 필요하겠지


<감상> 단풍 화물을 실은 기차의 출발역은 어디인가. 나무의 가지 끝에서, 산 능선에서 기차는 출발한다. 색채가 우리의 시선을 후린다. 몸에 독이 퍼지듯 내 눈동자의 선로로 들어와 질주하고 있다. 대비되는 색깔들이 같이 물들여지려면 서로 치명타를 입는다. 제 색깔을 다 뺀 것들은 간이역에서 깔끔하게 하역한다. 바람이 먼저 색깔들을 본다. 소리를 실은 바람이 색깔들을 확 번지게 한다. 그 소리에 의해 한 빛깔로 물들여간다. 단풍 화물차가 더 빨리 질주하려면 붉고 노란 땔감을 마련해야 한다. 마음 속 폐허의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에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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