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이 만들어 온 청첩장에 남편의 이름이 없었다. 양친의 이름 뒤에 소롯이 달린 사위와는 달리 홀어미 뒤에 달랑거리는 이름. 순간 아이가 조금 추워 보였다. 내가 오랜 시간 부여잡고 버틴 분투에서 명백하게 패배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그간 부서진 틀의 모서리를 붙들고 휘청거릴 때마다 때론 불안하게, 때론 원망스럽게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하는, “이제 그만 손을 떼도 좋다”는 무언의 허락이었다. 비로소, 불안했으나 고집스럽게 이어 붙여 놓은 틀이 완전히 부서졌음을 인정해야 했다. 아니 오히려 자꾸 부서지고 틀어지는 아귀를 맞추고 수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아이의 아비는 어느 날부터 가족 명단에서 슬금슬금 빠졌다. 스스로 뺀 발인지 어쩔 수 없는 뒷걸음질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니 남자는, 남편은, 아비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내 확고한 관념의 틀에 들어앉고 싶지 않았다는 게 옳은 판단이리라.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명백하게 실재하던 존재가 책임과 의무의 현실로부터 도피하면서 공기 빠져나간 풍선처럼 차츰차츰 그 형태를 잃어갔다.

딸아이는 퇴근길에 종종 만나서 뜨거운 어묵을 먹고 맥주 한 잔을 마시던 사람과 사내연애를 했다. 딸이 연애를 시작했음에도 나는 결혼까지는 아득히 먼 이야기로 여겼다. 결혼이란 대사는, 시간은 물론 물리적인 자금까지 충분한 준비가 필요할 터인데 그 무엇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그간 민망할 만치 엄마인 내게 자식의 결혼은 먼 얘기였다.

남자와 사이가 깊어감에 따라 아이의 얼굴엔 간간히 그늘이 드리워졌다. 살금살금 깨져가던 우리 가정의 틀 모서리에서 대롱거리던 아이가 연인에게 파손의 이유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결혼으로 만든 틀 안에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자식에게 굳건한 틀을 만들어주지 못한 자책으로 내 시름도 깊어졌다. 연인에게 우리 가정의 파적을 이야기하고 돌아 온 날, 아이는 후련해 하면서도 많이 아파했다.

1년 전부터 아예 소식이 두절 된 그에게 아이의 결혼을 알렸다. 언제부턴가 담장 밖에서 남의 집 들여다보듯 했어도 그래도 아직은 애비라는 이름으로 틀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부름이, 아이 혼인을 빙자한 자신을 불러들이기 위한 극단의 꼼수라고 여길까봐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특별하거나 화려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꽤 보기 좋은 그림이 우리 가족의 액자에 담겼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의 때가 묻고 벌레의 배설물 같은 자잘한 일상의 허물로 조금 칠이 벗겨지긴 했어도 말이다. 간간히 먼지를 털어내고 살짝 벌어진 모서리를 수선하면 안에 담긴 그림까지는 흘러내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가족은 그 틀 안에 각자 몫의 삶을 담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숙련 된 벽돌공은 눈짐작, 손대중으로도 시멘트와 모래에 적당한 물을 부어 농도를 맞추고 거침없이 비벼서 반죽을 한다. 사각 틀 안에 반죽을 부어 놓고 얼마간의 햇볕과 시간을 부여하면 얼추 쓸 만한 벽돌이 된다. 간혹 모서리가 조금 부스러진 것도 기초를 다지는 데 별 탈 없이 쓰인다. 벌어진 틈새는 시멘트반죽으로 메꾸면 되니까. 결혼생활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류였다. 가정은 조심스럽고 철저하게 닦고 매만져야 하는 예민한 유리상자였고 누구 한 사람 일방적으로 틀 안에 욱여넣고 적당한 거리에서 감상하는 그림도 아니었다. 내 인생은 물론, 아이들의 인생 또한 온전한 액자 안에 반듯하게 담아두고 싶어 어떻게든 아귀를 맞춰보려고 했지만 나 혼자 힘으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언제나 삶에 대해 대책이 없었고 세상에 오만했다. 결국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가족에게 깃들지 못했다. 그렇게 현실에 대한 회피인지 방관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에 주체적인 야망이 따로 있었는지 담장 밖에서 시나브로 남이 됐고 우리 가족의 틀은 부서졌다.



아이는 제 키의 세배 쯤 되는 웨딩홀 정문을 열고 홀로 걸어 들어왔다. 스스로 또 하나의 틀을 선택하고 만들기까지 많은 부대낌과 시행착오의 시간을 견딘 탓이었을까. 어느 때보다 걸음은 씩씩했고 얼굴은 환했다. 앞서 입장한 신랑이 길게 깔린 카펫 중간까지 마중 나와 손을 잡기까지 시종 여유롭게 하객들에게 인사도 하고 결혼식 내내 이가 쏟아지도록 웃었다. 심지어 나를 안고 등을 두드리면서 다부지게 속삭였다.

“엄마, 우리 울지 마요.”

한 젊은 사내가 우리에게 왔다. 그는 우리 세 모녀가 담겨 있었던 틀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매무새를 가다듬고 허리를 곧추세워 제 자리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새 기운 가득한 사람이 오니 틀 안의 그림에 생기가 돈다. 이제 새로운 관계맺음으로 인한 부대낌의 시간과 그 새로움에서 오는 약간의 시행착오와 흥분이 가라앉으면 우리는 이 틀에 익숙해 질 것이다.

벽에 걸린 낡은 액자 안에 무표정하고 건조한 얼굴을 한 남자가 사형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나날이 그의 얼굴만 색이 바래지더니 이젠 알라딘 램프의 연기처럼 점점 흔적이 사그라져간다. 이제 내 인생의 벽에 오래도록 걸려있던 부서지고 낡은 틀을 내린다.

이주옥(여·56) 서울특별시 강서로 2015년 [수필과비평] 수필등단 2017년-2019년까지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사이버지부장 역임, 현재 수필과비평 서울경인지부 사무국장
이주옥(여·56) 서울특별시 강서로 2015년 [수필과비평] 수필등단 2017년-2019년까지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사이버지부장 역임, 현재 수필과비평 서울경인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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