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똥을 뺀 멸치의 배가 홀쭉하다. 잘 건조된 듯하지만 바다에서 한 생을 보낸 몸에서는 채 마르지 않은 비릿한 바다의 흔적이 묻어난다.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바삭하게 습기를 날린 멸치와 표고, 무, 다시마와 함께 대파는 뿌리 채 한 솥에 넣고 푸욱 우려낸다. 하얀 김서리에 묻어나는 멸치 다시물냄새에 굳게 닫혔던 마음이 빗장을 연다.

남해 통영에서 멸치 두 박스가 택배로 왔다. 육수용과 죽방멸치다. 뒤죽박죽 서로 엉켜서 담긴 육수용 멸치와는 달리 죽방멸치는 한 치 흐트러짐도 없이 질서 정연하다. 마치 반듯한 선비의 자세를 보는 듯하다. 꼬리의 지느러미는 속살이 보일정도로 투명하다. 은빛 비늘 하나라도 상처를 입을까 조심스럽게 다룬 손길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반항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순종과 질서다. 거칠게 다룬 멸치의 비늘은 빛을 잃었고 꼬리는 잘려 나갔다. 어떤 것은 대가리만 덩그러니 남아 눈빛조차 희미하다. 두 박스에 담긴 멸치에서 닮은 얼굴을 마주한다.

한 몸에 태어난 형제도 제각각 다르다. 세상 밖으로만 도는 자유분방한 장남대신 아버지 곁은 차남인 남편이 대신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책임감 없는 큰아들이 내심 고울 리가 없다. 멸치도 어장의 경계 안에서 살던 멸치와 구속받지 않는 바다에서의 삶은 다르다. 형제가 각자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니 만나도 살갑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쳐도 객주에서 만난 나그네들처럼 서먹하다. 데면데면하게 구는 두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어느 한 자식만을 탓할 수 없어 마음만 고단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마디는 없다. 그 아픈 마디들로 인해 편히 눈도 감지 못했으리라.

멸치의 비린 맛은 다시마와 버섯, 파, 무를 넣어서 그 맛을 잡는다. 특유의 쓴 듯 한 맛도 야채로 인해 한층 풍미가 좋아진다. 센 불에 한 번 끓이고 난 뒤 중불에서 서서히 우려내 준다. 잠잠하던 솥안의 정적이 한 순간에 깨어진다. 서서히 온도가 달아오른 소용돌이 속으로 이 모든 재료가 곤두박질을 친다. 바다와 육지의 이질적인 생들이 서로를 거부하는 듯 거세게 충돌을 한다. 부딪치면서 상처를 받는 저항이 안쓰럽다. 솥안의 사정이 소송으로 만난 형제의 내력을 대변한다.

마지막 선고일 이었다. 치부를 한 올 남김없이 모두 벗겨버린 형제가 법정에서 마주 앉았다. 원고와 피고로 불리기 전, 형과 아우라는 가족으로 살았던 시간들이 더 오래였건만 생면부지의 얼굴처럼 낯설다. 한 솥에서 육수는 어떻게 우러나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을까. 판결문을 읽기 전 판사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는 형제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원고인 형이 동생에게 청구한 재산반환소송은 기각되었고, 피고인 남편은 방어에 승소했다. 증오하고 분노했던 형제의 난은 두 몸에 자양분이 모두 빠져나간 형체를 상실한 멸치 같이 되어서야 그렇게 끝이 났다.

건조했던 등뼈는 살을 버리고 지친 파뿌리에 허리를 기댄다. 온 몸이 허물어지도록 우려져야 끝이 나는 생애에도 저 마다의 억울함이 있다. 온갖 수모를 겪은 멸치는 은빛 비늘은 빛을 잃었고 존재감도 사라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고통이 없으면 육수는 깊은 맛을 내지 않는다. 소박한 국물의 맛 하나에도 순교적인 삶의 자세를 요구한다. 제 몸이 부서지고 모든 것을 상실하고 나서야 형제는 서로의 모습이 거울임을 알게 된다.

살이 뭉개지고 뼈가 어스러진 잔해를 본다. 속을 우려 낸 고단한 몸부림의 흔적이다. 좁은 솥 안에서 낯설지 않은 또 하나의 세상을 마주한다. 시인 신달자는 멸치국물을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의 몸 섞임이다. 서로 뒤틀리거나 배배꼬여서 증오를 다 삭이고 난 뒤에야 찾아오는 고요의 맛’ 이라고 표현했다.

요동치던 솥안의 정적이 고요하다. 법정에서의 분노와 허무가 돌아 나온다. 서로의 양분을 다 짜내고 난 뒤에야 오롯이 참 맛을 내는 순교의 맛을 본다. 그토록 형제의 우애를 바라시던 늙은 부모님의 간절한 눈물 같은 맛이다. 침해로 기억은 잃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눈에 담은 자식들의 얼굴을 놓지 못하던 흐릿한 눈물의 의미를 헤아린다.

맑고 진한 육수의 흔적을 읽는다. 어린 시절, 집안의 어른이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넓은 마당에 흰 천막이 세워졌다. 예를 마친 조문객들이 천막 안에 자리를 잡으면 전과 떡이 국수와 함께 개인상차림으로 나갔다. 품앗이를 온 이웃아주머니들은 가마솥에서 연신 국수를 삶아 냈다. 멸치국물의 냄새가 무거운 상갓집 분위기를 누르며 싸고돌았다. 그 냄새가 아늑하고 푸근해져 상주들의 곡소리마저 리듬을 타듯 아득하게 들렸다. 죽음에 대한 슬픔조차 평화로워 보였다. 할머니의 상여가 나가는 오일장 내내 육수의 냄새는 집안 곳곳이 배여 있었다. 마치 남겨진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처럼.

상처를 주기도하고 때로는 받기도하는 것이 삶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이 모든 것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서로를 보듬고 참 맛을 낸다. 느릿느릿 허물어지면서 자신을 버릴 때 비로소 맛을 낸다. 바다의 비릿한 물냄새와 들판의 투박한 흙내음이 어우러져 서로의 몸을 섞는다. 바다는 들판의 바람을 따라 살을 부비고 들판은 바다의 출렁임에 기대며 제 몸을 내어준다. 소용돌이가 멈춘 고요함이 지나간 흔적들을 어루만진다. 뼈저린 고통을 감내한 그 진한 육수의 인내에 상처받은 삶들이 위로 받는다.

국물이 입안을 맴돈다. 유년의 기억에 남아있던 낯익은 냄새가 온 몸으로 스며든다. 상주들의 낮은 곡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어우러지던 그 이율배반적인 맛이다. 삶의 고통과 죽음의 슬픔, 미움과 원망을 내려놓는다. 하얗게 서리 내려 얼었던 마음이 육수에 녹아내린다.

깊고 진한 향기는 내 삶에 온기가 되고, 분노와 증오를 다 삭인 그 맛의 역사는 한편의 서정시가 된다.
 

신정애(여·64)경북 포항시2016 신라문학대상 2017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한국문인협회 회원포항문학협회 회원
신정애(여·64)경북 포항시
2016 신라문학대상
2017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
한국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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