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을 살짝 벗어난 리듬이다.
발 디딜 곳 어딘지 모르면서
다짜고짜 뛰어내리는 빗방울들.
누구나 겪는 첫사랑도
한바탕 시간의 세례를 받고 나면
세상 하나뿐인 무엇이 되듯
어떤 상투는 익으면 눈부시다.
빗방울들 내려앉는 자리가
바람 따라 자꾸 바뀌어 간다.
연거푸 한자리에 떨어지는 게
상투라면, 바람이야말로
그걸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바람이 되어 불어가면
너와 나는 얼마나 싱싱해질까.
빗방울 처음 듣는 자리
저기쯤,
그때처럼 네가 서 있다.


<감상> 사랑은 서서히 오는 게 아니라 소낙비처럼 온다. 단 몇 초 만에 빠지는 게 바로 첫사랑의 상투성이다. 빗방울이 한 자리에 떨어지듯, 늘 오는 그 자리에서 너를 기다린다. 그 상투가 익으면 사랑은 이루어지는가. 사랑이 이어지는 것도 늘 상투적이어서 새로움이 없다. 그때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주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의 사랑은 점점 싱싱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소낙비를 처음 맞고, 빗방울을 처음 듣는 그 자리만큼 싱싱한 적이 있었던가. 바람이 상투를 벗어나는 지름길이 아니라, 소낙비를 함께 맞은 그 자리가 상투의 끝이자 처음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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