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진한 커피로 식곤증을 몰아낸다. 아이들이 하품하고 졸음에 겨워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무라고 다그친다고 해서 눈동자가 말똥해지는 시간이 아니다. 나른한 오후 2시 타임,

“쾅”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포 소리 같이 우렁차지만 짧은,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리다 정면으로 부딪칠 때, 몇백 년 된 나무가 한순간에 쓰러질 때나 나는 소리였다. 덜덜덜 책상이 마구 흔들렸다.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지진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움직이지 마”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책상을 붙들었다. 꽉 잡은 손에도 아랑곳없이 책상은 책을 흩뜨리고 연필을 굴렸다. 두려움에 확장된 아이들의 눈동자가 나에게 쏠렸다. 눈빛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도 한 아이의 눈동자가 파르르 요동치자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트리려 한다.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어항 유리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금붕어 한 마리가 어항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고는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어항은 갈라지면서 물을 쏟아냈다. 물살에 휩쓸린 다른 금붕어는 바닥으로 쏟아졌다. 바닥에는 금붕어들이 파닥거리며 뛰어올랐다.

흔들림이 진정되었다. 휴대전화, 지갑, 자동차 열쇠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다독이며 계단을 내려가는 길은 한층 한 층이 십층을 오르내리는 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들썩거렸다. 놀란 학부모들이다. 아이의 안위를 묻고는 당장 데리러 오겠단다.

우리는 근처 공터에 갔다. 아파트 주민들이 나와 삼삼오오 웅성거렸다. 아이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발을 동동거리며 떨었다. 이제는 괜찮은 거죠? 라며 내게 자꾸 물었다. 또래 친구들이 보이자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저 멀리서 새파랗게 질린 학부모가 뛰어왔다. 어머니가 보이자 아이들은 내 손을 놓고 달려간다. 엄마 품에 쏙 들어가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을 학부모에게 보내고 나니 내 가슴은 다시 엇박자로 뛰었다.

내 전화기에도 불이 났다. 아들과 딸이 엄마의 안부를 챙기느라 전화기가 뜨겁다. 나는 자동차를 공터에 주차하고 이곳저곳을 서성거렸다. 문득, 파닥거리며 물을 찾고 있을 금붕어가 생각났다. 어항에서 쏟아진 물줄기를 찾아 숨은 쉬고 있을까, 온몸으로 살려고 비틀대다 유리 파면에 찔리지 않았을까, 나 살자고 내팽개치고 온 것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목마름을 어찌 견디고 있을까, 입을 뻐끔거리는 금붕어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하루에도 수십 번 어항 속을 들여다보았다. 먹이를 줄 때나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을 걷어 낼 때도 살폈다. 커피잔을 들고서도 어항 앞을 서성거렸고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어항을 보았다. 금붕어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다가가 어항을 건드려 보기도 했다. 그러면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모습에 안도의 숨을 쉬기도 했다.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눈길을 보낸 금붕어였다. 자식과 같은 금붕어를 두고 달아나다니.

남편과 함께 집에 들어가 먼저 금붕어를 살폈다. 바닥에 널브러진 금붕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꼼짝 않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길쭉한 타원형의 물방울 안에 쓰러져 있다. 다행히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이 바닥에 있었다. 어항이 깨지면서 쏟아진 물이었다. 한 마리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기운을 차렸는지 꼬리를 들었다가 다시 떨어뜨렸다.

급한 대로 투명한 볼에 수돗물을 받았다. 축 늘어진 금붕어를 그릇에 담고 물을 넣었다. 그런데 꼼짝하지 않는다. 급하게 하느라 물의 온도에 신경 쓰지 못했다. 낯선 물의 온도에 놀라고 몇 시간째 방치된 몸이 회복하기에는 힘이 드는가 보다. 그런데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금붕어가 살기 바랐다.

바닥을 닦고 넘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웠다. 깨진 유리 조각은 신문으로 서너 번 둘러 봉투에 넣었다. 유리 조각보다 버려지는 쓰레기가 더 많았다. 책장에서 빠진 책들도 제 자리에 놓았다. 소파 위에 두었던 인형들까지 제 자리를 찾자 한숨을 돌렸다.

투명한 볼에 두었던 금붕어가 꼬물꼬물 헤엄을 치고 있었다. 위독하던 자식이 살아난 양 기뻤다. 수족관으로 전화를 했다. 좀 더 넓은, 환경이 좋은 새집을 구해주고 싶었다. 모래, 자갈, 수초 등 새 친구를 들인 수족관은 반들거리며 빛이 났다. 더 강한 재질이었다. 이렇게 살아난 금붕어가 새로 마련한 수족관에서 여유롭게 헤엄친다.

금붕어도 살아났고 일상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후유증은 남았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한 일이 자주 생겼다. 윗집에서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 몸이 경직되고, 윗집 아이들이 거실을 뛰어다녀도 집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했다. 휴대전화의 진동 소리에도 지진이 일어난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워 집에서 나와 근처를 무작정 돌아다녔다.

아이들이 잊지 않고 물었다. 물에서 떠난 금붕어는 어떻게 숨을 쉬었는지, 금붕어가 놀랄 때는 어떤 반응을 하는지, 금붕어도 우리처럼 소리에 놀랐는지, 아파하는지. 아이들도 금붕어가 살아남았다는 소식에 환호를 질렀다. 바닥에서 파닥거리는 금붕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생명은 무엇보다 귀하다. 나, 아이들, 금붕어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만약 금붕어가 죽었다면 또 다른 후유증이 되어 한참 나를 괴롭힐 것이다.

‘금붕어야. 살아주어서 고맙다’

이순혜(여·53)포항시 남구 효성로-포항소재 수필 최우수상 -국가보훈처 보훈문예 추모헌시 최우수상
이순혜(여·53)포항시 남구 효성로
-포항소재 수필 최우수상
-국가보훈처 보훈문예 추모헌시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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