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풍경으로 일상 속 쉼표 찾을 수 있는 곳

용문면 금당실 마을

낙엽 진 가로수에 갇힌 시골 도로를 따라 예천읍에서 자가용으로 북쪽으로 20분 정도 가다 보면 용문면 금당실 마을이 나온다. 마을을 둘러싼 산세는 용이 자리에 누워 있는 형상으로 마을을 보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을 앞으로 금곡천(金谷川)이 흐른다. 마을 뒤쪽에는 오미봉(五美峰)이 있고 마을 양쪽과 앞으로 각각 국사봉, 옥녀봉, 백마산 등이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형 지형이다.

마을 이름 유래에 대해서 몇 가지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다. 물에 떠 있는 연꽃을 닮은 지형이라 하여 금당(金塘)이라 불려왔다는 설, 마을 앞 금곡천에서 사금(砂金)이 생산되어 이곳을 금당실,금당곡 혹은 금곡으로 불렀다는 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마을을 지나면서 이곳의 지형이 중국 양양 금곡과 같다고 해 금곡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등의 설이 있다.

이재완 예천군청 학예사는 “마을이 생긴 정확한 역사는 문헌이나 역사 기록은 없지만, 마을 곳곳에서 보이는 고인돌을 통해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마을 입구 발길 닿은 곳마다 고즈넉함과 아늑함이 먼저 마중을 나온다. 대부분 건물은 낡고 오래됐다.

낡은 건물 앞으로 간간이 지나가는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이 흑백사진 속의 한 장면처럼 198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다.

용문면의 인구는 올해 10월 31일 기준 2338명이고 가구는 1351세대다.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였던 남사고(南師古)는 경치가 좋거나 지형이 뛰어난 10곳을 선정해 십승지지(十勝地地)라 불렀는데 이 중 하나로 이 마을을 꼽았다.

옛날부터 예천을 충효(忠孝)의 고장 또 ‘天降甘露地出醴泉’(천강감로 지출예천·하늘에서는 단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단 샘물이 나온다)이라 했다. 그만큼 살기 좋은 고장이란 뜻이다. 예로부터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 봉황도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는 “예천(醴泉)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예천의 물은 맑고 달기로 유명했다.

금당실 마을은 학자와 관인(官人) 선비 우국지사 등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용문 가서는 인물 자랑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조선 초기 인구 비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과거 급제자가 나온 곳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편찬한 실학자 초간 권문해 선생이 살던 곳이다.

△마을의 유래와 지명.

조선 중기 학자 남사고는 예천 용문면 금당실(金塘室)은 십 승지의 하나로 전쟁 기근 역병 등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했다. 토지도 비옥해 생산량이 많아 약 496㎡ (150평)이 한 마지기다.

지명과 관련해서는 명나라 장수가 이곳을 지나던 중 학 고개가 있고 개 고개가 오른쪽에 있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금계(金鷄)가 앞에 있고 옥견(玉犬)이 뒤에 있는 중국 양양 고을의 금곡(金谷)과 같다”고 했다.

금곡은 여기서 비롯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곳의 마을 앞을 흐르는 금곡천에서 사금이 나왔다고도 한다. 마을 지형이 물에 떠 있는 연꽃(연화부수형)을 닮았기 때문에 금당(金塘)이라 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마을 안 곳곳에 30여 개의 고인돌 무덤이 있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헌 등에 따르면 600여 년 전, 감천 문씨가 이곳에 입향 했으며, 그의 손자 문부경의 사위 박종린과 변응녕이 이주해와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금당실은 이웃 산 넘어 동쪽 마을 맛 질과 함께 ‘반 서울’이라고도 했다. 서울의 절반 정도라는 말이다. 조선 건국 당시 태조가 도읍지를 정할 때 후보지로 거론됐으나 큰 물줄기가 없어서 아쉽게 서울이 되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 향촌에서 수많은 급제자 등 인물을 배출하니 한양처럼 인재가 많다고 하여 반서울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금당실 돌담길

△ 금당실 돌담길.

마을 고택을 잇는 7.4km의 돌담길은 고즈넉한 풍광을 지녀 사색하기도 좋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소담한 돌담길이다.

마을 입구 용문면사무소 옆 느티나무(당산목)를 중심으로 방사선 형태로 뻗어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마치 미로 같다. 길이가 약 이십 리(7.4km)에 달한다. 금당실의 돌담은 물가나 밭에서 나온 호박돌로 담장을 쌓아 올렸다.

돌담 사이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에 빠져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일상 속 쉼표를 찾은 기분이다.

△금곡서원.

함양 박씨 3인의 학문을 기리는 금곡서원은 치암 박충좌 선생을 모시던 안동의 역동서원이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지고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금곡서원이 복원됐다. 그의 후손인 행정 박눌과 남야 박손경을 좌우에 봉안했다.
 

금당실 송림

△금당실 송림.

송림을 마을 사람들은 ‘금당실 수’라고 부른다. 2006년 3월 28일에 천연기념물 제469호로 지정됐다. 금당실 송림은 마을의 서쪽에 남북 방향으로 조성된 숲으로 선형으로 조성한 소나무 단순림이다.

송림은 오미봉 밑에서부터 용문초등학교 앞까지 약 800m에 걸쳐 소나무 수백 그루가 울창하게 조성돼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이 송림은 노거수 900여 그루가 길이 800m, 폭 50m 내외의 수림대를 형성하고 있다. 송림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의 높이는 13∼18m, 가슴높이 둘레는 20∼80㎝, 나무갓의 폭은 5∼12m, 수령은 100∼200년이다.
 

초간정

△초간정·병암정.

금당실 마을에서 차로 5~10분 거리에 있는 초간정과 병암정도 반드시 들러 볼만한 명소다. 초간정은 우리나라의 최초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가 지은 정자다.

암반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아 올린 초간정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선조들의 무위자연 사상을 보여준다.

병암정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낸다. 병암정은 금곡천을 끼고 나지막한 병암산 천연 암벽 위에 세워진 정자다. 드라마 ‘황진이’에서 황진이 역을 맡은 하지원이 첫사랑 김은호 역을 맡은 장근석을 만나는 장면을 찍은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유인이 낙향해 옥소정 이라는 이름으로 건축했다. 이후 예천권씨 문중에서 매입해 권오복의 학덕을 추모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전통의 모습을 잘 간직한 금당실 마을은 관광객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소달구지 타기, 각종 농사체험, 전통 먹거리 체험, 서예 교실 등에 참여할 수 있고 주말농장 등이 있다.
 

이상만 기자
이상만 기자 smlee@kyongbuk.com

경북도청, 경북경찰청, 안동, 예천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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