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언젠가 스위스 알프스에서 특별한 장례식이 열렸다. ‘피졸’이란 이름을 가진 어느 빙하를 추모하는 행사였다. 지구 온난화로 십여 년 전에 비해 오분의 일 정도가 남은 얼음덩어리. 누군가 그 형상을 감안해 붙인 명칭이다. 다들 진지한 맘으로 애도를 표하며 환경의 소중함을 알린 퍼포먼스.

삶과 대척을 이루는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다. 모든 생명은 일회성 용도이기에 경험이 불가능하다. 간혹 죽었다가 깨어난 기적을 얘기하나 아마도 환상이 아닌가 여겨진다. 누구나 죽음은 두렵다. 그 나약함이 신앙을 품고서 종교에 귀의하게 만든다.

인간은 영생을 꿈꾼다. 불로불사는 시대를 초월한 오랜 욕망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고자 동남동녀를 보냈다는 사기의 기록이나, 현대인이 태반주사 같은 노화 방지에 눈길을 돌리는 양태에서 그 원초적 본능을 본다.

본관이 성주인 나의 선조 중에 ‘이조년’이란 인물이 있다. 일명 ‘다정가’로 일컫는 조선 연애시 백미인 ‘이화에 월백하고∼’를 지은 시인이자, 고교 교과서에 실렸던 ‘형제 투금’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분은 형제들 함자가 특이하다. 자식들 장생을 염원한 부친은 맏이부터 백년·천년·만년·억년·조년이라 작명했다. 다섯 아들 모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막내인 이조년은 74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선 만수한 셈이다.

인류의 생물학적 연한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위생과 영양 개선 게다가 첨단 의술 발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미국의 저명 의학자 둘이서 논쟁을 벌였다. 2150년에는 수명을 늘리는 약으로 150세 장수가 이뤄진다는 의견과 노쇠 때문에 120세가 최대라는 주장이 맞섰다.

결국 두 사람은 판돈 5억 달러가 걸린 세기의 내기를 벌인다. 각자 150달러씩 갹출해 주식 시장에 묻어두고 2150년에 이긴 쪽의 후손이 갖기로 정했다. 지금의 추세로 주가가 오르면 그쯤의 가치가 된다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통찰을 일깨우는 문명사가 유발 하라리는 논한다. 질병·기아·전쟁 문제를 해결한 인류는 평균 수명이 150세로 연장될 것이라고. 영국의 사상가 버나드 쇼의 설파는 이를 훨씬 넘어선다. 사람은 철들 만하면 죽으니까 20세기 복합적 문명을 경영할 지혜를 터득치 못한다고. 그래서 인간 목숨은 300년쯤 돼야 한다고.

인생길은 불확실한 여정이다. 언제 어떻게 생을 마감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에 나오는 대사처럼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인간은 출생과 더불어 죽음의 순례를 시작한다. 베이컨의 말이다.

세계 각지엔 유달리 백세 이상 장수자가 많은 지역이 있다. 학자들은 지도를 펼치고 이런 장소를 파란색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이른바 장수촌을 뜻하는 ‘블루 존’이다. 이탈리아 사르데냐와 일본의 오키나와 그리고 코스타리카 니코야와 그리스 이카리아 등이다. 한국도 어디쯤 있지 않을까.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장수학자를 블루 존에 파견했다. 그곳엔 현대의 일상적 삶과 다른 문화적 특징이 있었다. 바로 정서적 안정감과 집단적 소속감을 갖는 공동체. 가족과 친구와 이웃 간의 끈끈한 우애가 밑바탕이다. 대가족 제도를 가진 사르데냐와 계모임 비슷한 ‘모아이’로 교제하는 오키나와는 우리가 다시금 접목할 만한 비결이 아닐까 싶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