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벗어놓은 허물들이 전혀 허물이 되지 않는 장마당 한켠, 갈매 하늘 같은 다듬돌이 묵언 수행하듯 앉아있다. 늙은 할배의 좌판에는 시간의 저쪽에서 모여든 잡다한 물건들이 환생이라도 하려는 듯 눈을 반짝인다. 벼룩시장의 가판대에서 청석의 다듬돌을 만나면서 우물 같은 상념이 두런거리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나는 열 두어 살의 계집애 신이 내렸는지 갑자기 혀가 짧아진다. “옴마야 할배야 이 다듬돌 얼마야?” 어느새 유년의 기와집에 선다.

‘고뿔도 안 걸릴 년 서방 잡아 처먹고도 입맛도 안 다신 년. 방망이질 소리가 접점을 찍는다. 할매는 씩씩거리며 휘모리장단으로 다듬이질을 몰아가고 그 장단이 버거운 엄마는 슬그머니 방망이를 밀어놓고 일어선다. 분명하게 할매는 엄마를 향한 욕은 아니었다. 아랫집 과수댁을 향한 욕질이란 것을 우린 다 알고 있다. 오늘 아버지가 온다는 기별을 받은 할매는 며느리에게 미안한 심사를 그렇게 풀고 있었을 것이다. 오동나무 잎 사이로 살며시 가을이 비집고 들어오는 날 속내 들킬세라 엄마는 적삼 섶을 여며본다.

여름내 집 나갔던 아버지가 가을 문턱을 밟고 들어섰다. 독립운동을 하고 온 것도 아니면서 어쩜 그리도 당당한지. 아침에 마실 다녀온 사람처럼 성큼 들어서는 등 뒤에 쑥색 양장을 차려입은 이쁜 여자가 서 있다. 당연한 걸 알면서도 엄마의 심장은 널을 뛴다. 초저녁 달빛이 스며드는 마루에서 자근 자근 다듬질을 하던 엄마의 손목에 힘이 실리고 어느새 난타가 가을밤을 때린다. 아랫방에 불이 꺼지면 살며시 방망이를 밀어두고 뒤란으로 이어진 둔턱에 올라 별을 보던 엄마, 그때 난 열두 살이었다.

다듬돌과 손때묻은 방망이 두 개를 포함해서 거금 십만 원을 주고 샀다. 할배가 부르는 가격은 칠만 원이었다. 할매의 얼굴도, 엄마의 모습도 돌 속에 어른거려서 기분 좋게 삼만 원을 더 얹어 건넸다. 함지박만 하게 웃는 할배의 입안은 허공이었다. 한 개의 치아도 없는 하회탈의 웃음과 다듬돌, 시간이 잠시 스톱워치에 걸렸다.

긴 장마가 걷힌 날. 바지랑대 위에 고추잠자리가 가을을 물고 앉았다. 풀 먹여 널어놓은 빨래들이 바지락 거리며 몸을 말리고 엄마의 손엔 어느새 방망이가 들려있다. 소슬한 바람이 불기 전에 명주며 무명이며 폭닥폭닥 부드럽게 다듬질을 할 모양이다. 아래채에 들어앉은 여자의 새 이불도 또 만들어 줄 건지 애꿎은 다듬돌만 몇 번씩 닦고 있다. 연신 빈 곰방대를 빨아대며 며느리 쪽을 흘끔거리는 할매는 어느새 조금 기가 죽어 보인다. 아래채 쪽마루에서 서름한 낯짝을 한 아버지의 새 여자는 뒤꿈치를 들고 안채를 기웃거린다. 눈치를 챈 걸까 따 딱! 엄마의 손에서 다듬이 방망이가 호령을 한다. 꽃고무신 한 짝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내빼는 여자 뒤에서 열두 살 계집애의 유리 같은 웃음이 담을 넘는다

십만 원이나 주고 산 고물 다듬돌을 사정사정하며 택시에 실었다. 요즘 그런 게 왜 필요하냐고 몇 번이나 물어오는 기사님에게 나도 모른다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했다. 정말로 나도 모른다 이걸 왜 샀는지. 벼룩시장 가판대에서 다듬돌을 발견하는 순간 그건 벌써 나의 소유로 낙 점 되어버렸다. 필요의 유무가 필요 없었다. 내방 구석진 자리에 앉히는 순간 복사꽃 냄새가 방안을 흐르고 또닥또닥 음률이 되어 흐르는 방망이 소리를 듣는다. 고향의 복판에 섰다. 타임머신이었다.

엄마의 나이가 되고 할매의 나이가 되면서 다듬돌을 사이에 두고 오가던 방망이질 언어를 해독하게 되었다. 명주 올이 헤실헤실 풀어지도록 밤 깊은 줄도 모르고 고부의 다듬질이 계속되면, 아래채 여자가 떠났거나 아래채에 또 다른 여자가 들어왔거나 붉은 가죽가방을 싸며 아버지의 역마살이 시작되거나 한다. 죽일 놈 썩을 놈 할매는 잘난 아들을 씹어대고 가지도 못할 도망질을 수십 번도 더 가며 엄마는 꾸역꾸역 몽니를 참는다. 방망이는 두 사람의 생각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고 다듬돌 위에는 명주옷이 아닌 아버지가 잘근잘근 난도질을 당하고 있었을 터, 그런 밤엔 마당의 삽살개도 코를 박고 조용히 자고 바람마저도 숨을 죽인다.

참 오묘하고 깊다. 무한정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수렁 같다. 검은색도 아니고 푸른색도 아니다 그렇다고 북청 색도 아니다. 가만히 마음을 얹어보면 엄마의 무명치마도 보이고 우물 속 검푸르던 이끼도 보이고 오래된 유년의 기와집이 담겨있다. 검은 오디 같은 엄마의 속도 거기 있다. 여인들의 수난을 위하여 존재했던 다듬돌일까? 얼마나 많은 한과 눈물이 스며들었을까 자근자근 달래다가 콩닥콩닥 가슴도 쓸다가 ‘퉤’ 침 한번 손바닥에 묻혀 다잡아 쥔 방망이로 무명이불 난들 난들 헤질 때까지 타작하듯 팬다. 밤은 길고 울화는 풀무질하고 한으로 부르는 속 노래에 리듬을 타는 돌. 흐르고 흘렀을 눈물을 가두어 푸른 강으로 흐른다.

3년을 누워서 지낸 할매의 다리는 오금이 붙어버렸다 두 무릎을 세우고 오래 누워 있다 보니 사후의 경직이 아니라도 할매는 다리를 펼 수가 없었다. 입관을 해야하는데 두 다리를 세우고 있으니 난감한 노릇이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장례 절차를 도와주시는 분이 느닷없이 다듬돌을 들고 오셨다. 어느 어른이라도 상황을 짐작이라도 했으면 식구들을 내보내야 했을 것이다. 서슴없이 할매의 두 무릎에 다듬돌을 얹어 버렸다. 나는 분명히 똑 똑하게 보고 들었다. 할매의 다리가 따다닥 소리를 내면서 바로 펴지는 것과 그 반동으로 죽은 할매가 산사람처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갑자기 일어나는 죽은 사람 앞에서 모두 들 기겁을 하고 난 털석 주저앉아버렸다. 다듬돌의 쓰임은 참 다양하기도 했다. 그 후부터 멀리서 들리는 다듬이 소리마저 귀를 막아야 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다듬돌을 볼 수가 없었다. 나의 트라우마는 오랜 시간 동안 신경 안정제를 처방받아야 했고 어린 나이에 우울이란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할매의 다리가 다듬돌 밑에서 부러지며 지르던 비명이 늘 내 귀 속에 살고있었다.

벼룩시장 모퉁이에서 모서리가 조금 깨진 다듬돌을 보는 순간 할매와 엄마가 한꺼번에 달려왔다. 긴 겨울밤 동상이몽의 고부가 두드리는 휘모리장단은 해묵은 속앓이를 풀어내는 노래였다. 접 신 하듯 두드리는 방망이질에 진부한 대하소설이 실타래같이 풀리고 두드려 담고 포개어 담아도 흔적도 없이 스며드는 다듬돌이다. 오늘 밤도 가슴의 옹이를 녹여내던 두 여인의 노래를 가만히 귀 대고 들어본다. 오랜 불면을 잠재우는 소리다. 무명치마폭을 베고 누운 밤이다. 은발의 계집애가 되어 내방 한구석에서 할매와 엄마의 긴 이야기를 듣는다. 또드락 또드락 가을밤이 깊어간다. 눈물 한 방울이 푸른 돌 위에 구른다.
 

박정화(여·72) 경기도 과천시 부림동대구출생문파문학 시 등단저서 수필집?? 복사꽃 지는소리수상??2020 매일신문?시니어 문학상(수필)? 2019 경북일보 문학대전 입선 (수필)
박정화(여·72) 경기도 과천시 부림동
대구출생문파문학 시 등단
저서 수필집 '복사꽃 지는소리수상'
2020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수필)
2019 경북일보 문학대전 입선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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