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하늘이 너무 예쁘다. 구름 꽃이 피어있다. 드라이브라도 가야겠다. 코로나19 종식 때까진 사회와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이다. 인적이 드문 곳을 생각하다보니 사찰이 떠올랐다. 산속에 있으니 공기도 좋겠다, 초록의 푸새도 실컷 볼 수 있겠다, 9살 딸아이와 나섰다. 의성에 있는 고운사로 목적지를 정했다. 지난해, 가을 문학기행으로 다녀온 곳이다. 문학기행 복습도 할 겸 자연 속을 아이와 걷고 싶다.

고운사 입구까지 무성한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아이는 초록 터널을 지나며‘와아’감탄의 소리를 지른다. 주차장엔 차가 없다. 아주 조용하고 평화롭다.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의 흙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아이를 천왕문에 서게 하고, 나는 일주문에 서서 셀카봉을 길게 뽑아 사진 속에 함께 나올 수 있도록 찍는다.

아이는 사찰 방문이 처음은 아니지만 아장아장 걷던 때라 기억하지 못한다. 천왕문을 지나며 4대 천왕이 가진 악기, 용, 칼, 탑에 관심을 보인다. 누구냐고 묻는 말에 절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말해준다. 아이에게는 무섭게 보일 듯한데 아이는 무섭다고 하지 않는다. 제대로 알려주고 싶지만 불교에 대해 모르고, 안다 해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계곡을 따라 도량으로 오른다. 백성들이 어느 현감의 고마움을 길이 남기기 위해 세웠다는 철비 앞에 선다. 돌은 눈과 비, 바람에 쓸려 깨져서 모양이 변하지만 철은 변함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다. 아이를 향한 변함없는 엄마의 마음을 들려주고 싶음이다.

가운루에서 계곡을 바라본다. 아이가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다며 들떠한다. 돌아가는 길에 최치원 문학관에 들러 최치원의 인생사희(人生四喜)를 보여주어야겠다. 범종을 지나오면서 종을 쳐보고 싶다는 아이, 법고와 목어에 대해서도 묻는다. 죽은 영혼들을 들먹이면서 이야기하니 신기해한다. 우리는 모두 영혼이 있어서 위로 받아야 한다고 말해주니,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신비아파트’를 견준다. 적절한 비유를 대는 것 같아 영혼을 위로한다는 의미를 이해하는 듯하다.

연수전 벽에 그려진 그림과 천장의 그림들에 관심을 보인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장수를 바라는 뜻으로 그린 벽화임을 알려준다. 그림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유니콘의 뿔을 찾아낸다. 자기는 유니콘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유니콘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잠깐 놀란다. 아, 그렇구나!

연수전을 나오니 마당에는 관광객 서너 명이 어슬렁거릴 뿐이다.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 약사전으로 향한다. 열린 옆문으로 불상이 보인다. 그늘이 어둠처럼 깔린 불당 안을 아이는 머리를 들이밀고 본다. 아이는 불상을 보고 부처님이라고 칭한다. 거리낌 없이 다가가려는 아이가 내게는 당황스럽다. 불교를 종교로 가진 사람만이 불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들어가서 부처님을 만나보라고 말하고 있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다. 그저 안을 한 번 바라보고는 뒤돌아서는 것이 고작이었다. 불당 안에 들어가는 것이 내게는 어색하다. 더구나 불상 앞에서 자진하여 합장을 하며 절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본적이 없다. 나와는 다르게 거부감 없이 행동하는 아이가 기특하다.

불전함이 보인다. 지갑을 꺼내 천 원짜리 한 장, 오천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음을 확인한다. 천 원을 넣을까 오천 원을 넣을까 잠시 고민하다 오천 원 권 지폐를 넣는다.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다. 아이는 아직 돈을 모른다. 부처님 앞에 아이와 나란히 섰는데 재물이 커야 좋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때 묻은 나의 생각이다.

등 뒤로 매고 있던 배낭을 벗고는 아이에게 부처님 앞에 절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노라고 한다. 십 수 년 전에 친정 엄마 따라 작은 암자에 갔을 때, 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이 앞이니 흉내라도 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오체투지의 큰 절을 한다.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하고 손을 뒤집어서 손바닥을 위로 들어 올렸다 내린다.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몇 번을 반복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한 번은 분명 아니었던 것 같고, 퍼뜩 생각난 것이 두 번은 죽은 자 앞에서 하는 것이니 아닐 테고 그래서 세 번을 한다. 몸을 접었다 펴면서 마음속으로 ‘나의 이런 행동이 아이에게 훌륭한 엄마로 보여 지겠지!’하며 자만한다.

아이는 작고 귀여운 몸짓으로 잘도 따라한다. 마지막에 머리를 바닥에 대고 손바닥을 위로 올리며 한참을 멈춰 있다. 뭔가를 중얼거리는 듯하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무엇을 저리 중얼거릴까?’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이제 일어서도 된다고 하니 그제야 고개를 든다.

“무슨 기도했어?”

“나는 엄마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엄청 오래오래 만수무강하게 해달라고. 늙어져도 나랑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아이는‘오래오래’라는 말에 힘을 주며 반복한다. 그리고는 약사전 앞마당에 크고 작게 세워진 돌탑을 보더니 자기도 돌탑을 만들겠다며 쪼그리고 앉는다. 돌탑은 왜 쌓느냐는 물음에 사람들이 소원을 바라면서 쌓는다고 하니 자기도 그래야지 하며 돌을 주워 올리기 시작한다.

“우리 엄마 엄청 오래 살게 해 주세요.”

“고마워.” 이 한마디로 답례를 하는데, 마음이 멍하다. 눈 밑이 아렸다.

일 년 전 이맘 때, 아이는 고민했었다. 사람이 늙어지면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자기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다. 어디서 무언가를 보고 듣고 와서 하는 말이려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엄마! 왜 사람은 늙으면 죽어? 엄마도 늙으면 죽어?”

웃음이 났다. 건성으로 대답했다.

“늙으면 죽어야지.”

그러자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혀서 엄마는 죽으면 안 된다고 했다. 웃음을 참으며 또 건성으로 답했다.

“엄마 죽으면 아빠도 있고 언니도 있잖아.”

머금었던 눈물이 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훌쩍 거리며 말했다.

“아빠 있고 언니 있어도 엄마가 없으면 안 돼, 엄마는 꼭 있어야 된다 말이야!”

너무 귀여워서 꼭 안아주며 “그래, 엄마가 오래 살게!”했다.

약사전 불상 앞에서 엄마의 만수무강을,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머리를 땅에 대고 작은 두 손을 들어 올려 한참을 기도한 내 아이. 어릴 적 나도 그랬다. 엄마가 오래오래 내 옆에 있게 해달라고 매일 밤 잠들기 전 하늘에 기도했었다. 엄마가 너무 좋아서,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아서, 엄마랑 오래 살고 싶었다. 내 아이도 그런 마음이겠지.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

하지만 내 마음이 멍한 이유는, 현재의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다. 내 마음은 어떤가? 어린 날, 그 때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가? 성인이 되어서,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의 만수무강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고백한다. 나는 부모님을 모두 잃은 친구를 부러워한 순간이 있다.

친구는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재작년까지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호스피스병원에 들어가신지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친구는 웃었다. 우리 엄마 이제 안 아프니 다행이라고. 그 말이 슬펐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후 그녀가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목적은 휴식이었다. 그 날 밤, 그녀는 부모님을 모두 보내 드린 것에 대해‘그동안의 밀린 숙제를 마친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확히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홀가분하다고 이야기하는 그녀가 내심 부러웠다. ‘나도 이제 부모님을 책임져야 하는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부모님이 내 어깨에 앉은 짐처럼 느껴졌다.

고백한다. 정말 부모님께 잘 해드리고 싶다. 매달 용돈도 드린다. 솔직히 나 같은 딸이 없다고 거만한 생각을 한다. 더 잘해드리고 싶고 늘 그것이 고민이라며 남들 앞에서 자랑처럼 떠들어 대기도 한다. 여행을 갈 때도 부모님을 동반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운해하실까봐. 그런데, 사실 나는 위선자다. 용돈을 드리면서도‘언제까지 드려야 할까?’를 생각하고, 함께 여행을 하면서도‘아, 피곤하다. 홀가분하게 다니고 싶다.’를 머릿속으로 감추고 되뇐다.

고백한다. 지금의 내 아이의 마음과 같은 어릴 적 순수한 나는 사라졌다. 아이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를 염려하며 우쭐하고 물질에 흔들린다.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 비록 거짓이 섞였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날까지 이제껏 해왔던 대로 부모님을 섬겨야 하겠지! 일흔이 넘으신 부모님, 지천명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 나 자신, 얼마 후면 우린 같은 입장이다. 부모님 마음에 효녀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 따위는 없다. 그저 이 좋은 세상에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것뿐이다.

아이는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떨까? 내가 엄마를 향한 어릴 적 마음을 기억해 냈듯이, 내 아이도 오늘의 자신의 모습을, 엄마인 나를 향했던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어린 날처럼 간절하지도 않은 지금, 나는 정말 염치없고 어리석지만 그러기를 바래본다.
 

오수미
한국수필문학관 수필아카데미 회원
2019년 달구벌문예대전 가작 ‘좋은생각’ 원고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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